Page 56 - 26권 korus 8월호 18
P. 56

LIVING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장발 / 미니스커트 단속



                                                                 되어 머리를 깎겠다는 각서를 쓰거나 구내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은 후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바보들의 행진
                                                                 풀려났으며, 머리를 깍지 않고 버틸 경우 즉결 재판에 넘겨졌다. 1970
                                                                 년 8월 28일 서울 시내에서 ‘히피성 청소년’을 단속하였는데, 보고서에                                                                                  청바지·미니스커트·통기타·장발로 상징되는 70년대 청년문화
                                                                 따르면 즉심 29명, 훈방 648명으로 총 677명에 대해 단속하였고, 대
                                                                 부분 15-25세이었다. 1973년「경범죄처벌법」이 개정되면서, 함부로                                                                                   사실 1970년대 한국의 청년문화는 1960년대 서구 청년들이 벌였던
                                                                 휴지·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는 행위, 술주정행위, 유언비어 유                                                                                     반전 및 인종 차별 반대 운동, 기성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문화를 거부
                                                                 포행위, 장발·비천한 복장 착용, 비밀댄스 교습행위 및 그 장소 제공행                                                                                   하는 히피 운동이 이입된 것이었다. 서구에선 여기에 노동 계급과 대
                                                                 위, 암표매도행위, 새치기행위, 출입금지구역이나 장소에의 무단출입                                                                                      학생이 연대하면서 저항적인 문화로 확대된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행위, 폭발물의 조작·장난행위 등이 경범죄의 종류에 추가되었다. 이로                                                                                    한국 땅의 ‘히피 문화’는 변혁 운동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그때 대학생이
                                                                 써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할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열망했던 서구 라이프스타일과 서구 대중문화를 뜻했다.

                                                                 1976년 5월 정부는 “국민의 주체의식을 확립하여 건전한 사회기풍을                                                                                    아무튼 당시 장발은 ‘의식’ 있는 젊은이의 ‘저항’의 상징이었다. 아니 단
                                                                 정착화”한다는 이유로 장발단속 계획을 수립하여 ‘히피성 장발’에 대한                                                                                    속을 하니 그 반항으로 더 장발을 선호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유행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정부는 장발단속이 ‘국민의 무관심과 이해부                                                                                     됐다. 대학생이 모이는 서울 종로와 명동, 신촌에서는 장발과 미니스커
                                                                 족으로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판단하고 공무원뿐                                                                                     트를 입은 ‘민족의 주체의식과 국민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미풍양속사
                                                                 아니라 ‘학교, 단체, 기업체, 공장 등 전 조직을 통하여 조직적이고 자                                                                                  범과 이를 단속하는 경찰의 숨바꼭질이 벌어지곤 했다.
             만약 지금 백주에 대로에서 정복을 입은 경찰관이 지나가는 남자애들
                                                                 율적인 지도단속’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또한 도시 새마을운동으로 발
             긴머리를 자르거나 아가씨들 붙잡아 치마끝이 무릎에서 몇 센티나 올
                                                                 전시켜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하고 장발 계몽운동과 장발이 근절될 때                                                                                       하길종 감독(1941~79년)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년)에서 보
             라갔나 재고 있다면? 이런 웃지 못할 일들이 오래전 서울 도심 한복판
                                                                 까지 무기한 단속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이 무렵 보건복지부와 시·도는                                                                                    여주듯 쫓고 쫓기며 나오는 송창식의 <왜 불러>라는 노래는 당시 시대
             에서 버젓히 일어났었다.
                                                                 요식업조합, 이용조합, 숙박업조합, 다방 및 다과점조합에 공문을 보내                                                                                    상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어 “남·녀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장발”을 한 종업원에 대한 장발 정화
             1960~70년대는 정부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인에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다.
             대한 각종 규제가 있었다. 이 시기에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되

             어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간 히피문화가 팝음악과 함께 들어오면서, 장
                                                                 1980년 내무부는 ‘장발단속이 청소년들의 자율정신을 저해하는 부
             발과 미니스커트는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
                                                                 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단속중지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게 유행하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대표적인 퇴폐
                                                                 1988년에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하면서 “남·녀를 구별할 수 없을 만
             풍조로 규정하고 엄중 단속하였다. 경찰은 자를 들고 미니스커트를 입
                                                                 큼 긴 머리를 함으로써 좋은 풍속을 해친 남자 또는 점잖지 못한 옷차
             은 여성들을 단속하였는데, 단속 기준은 무릎 위 20㎝ 였다.
                                                                 림을 하거나 장식물을 달고 다님으로서 좋은 풍속을 해친 사람”을 경
                                                                 범죄의 종류에서 뺌으로써 장발이나 미니스커트에 대한 단속 관련 규
                                                                 정도 삭제되었다.















             장발에 대한 단속기준은 남·여의 성별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긴머
             리, 옆머리가 귀를 덮거나 뒷 머리카락이 옷깃을 덮는 머리, 파마 또는
             여자의 단발형태의 머리였다. 장발로 적발되면 대부분 경찰서로 연행





             56   Korus Silver Club                                                                                                                                                                                      Korus Silver Club   57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