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월간사진 2017년 7월호 Monthly Photography Jul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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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2
하늘과 바람과 별 #자연에 몰두하고 참여하라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운하에 매료돼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가가 되기 전 드로
잉과 페인팅을 했었다. 오랜 시간 런던, 베를린, 일본 같은 대도시에서 거주하다 보니 문
득 자연을 접하며, 자연에서 보고 느낀 것들로 작업을 하고 싶어졌다. ‘카메라 없는 사진’
영국 출신 수잔 더져스(Susan Derges)는 ‘카메라 없는
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역시 자연 세계에 몰두하고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사진’ 분야의 일인자로 불린다. 시바크롬 인화지 위에
#시바크롬으로부터 시작된 작업
나타난 빛과 물의 흐름이 빚어낸 추상적 풍경은 보는 이
1980년대 초 일본 쓰쿠바대학 실험예술과 석사 과정을 하며 처음 ‘카메라 없는 사진’ 작
로 하여금 고요의 순간을 넘어 심연에 다다르게 하는 특
업을 시작했다. 강사 중 한 명이 시바크롬(Cibachrome)이라는 새로운 컬러 포지티브 인
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화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것을 계기로 시바크롬 인화지를 클라드니 무늬(판 위에 모래
에디터 | 박이현 · 디자인 | 서바른
를 뿌린 후 진동을 주면, 진동을 받은 모래들이 무늬를 만드는 것)를 표현하는 실험에 사
용해보았다. 이를 통해 가시적인 세계 뒤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
았다. 그때의 결과물들이 내가 만든 최초의 ‘카메라 없는 사진’이다.
#강물과 달빛과 인화지
포토그램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밤 풍경은 암실 역할을, 강물과 바닷물은 슬라이드 혹은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한다. 먼저, 인화지를 넣은 알루미늄 슬라이드를 강물(또는 바닷
물) 표면의 바로 아래에 위치시킨다. 이후 물의 흐름을 살피다가 적절한 순간 알루미늄 슬
라이드 위에 초소형 플래시를 터트린다. 물의 움직임을 인화지 위에 기록하는 것이다. 밤하
늘 빛은 시바크롬 이미지에 색조를 더한다. 보름달 빛은 짙은 파란색으로, 초승달 빛은 짙
은 녹색으로 나타난다. 강물 주변 나뭇가지와 나뭇잎은 검은 윤곽으로 묘사된다. 흐린 날씨
는 하늘에 거대한 반사체를 만든다. 이때 마을에서 해안가로 돌아오는 빛은 인화지 위에서
마젠타(혹은 장미색) 색을 띤다. 폭풍우가 부는 날에는 물과 모래가 나선형 패턴을 만든다.
#‘카메라 없는 사진’의 어려움
계절과 날씨, 조석 ,달빛 등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순간의 장면을 포착할 때 이들이 상
당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시바크롬 인화지가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얼마 전부터 디지털을 공부하
기 시작했다. 작업실에 디지털 장비도 갖췄다.
#내면의 삶과 세상을 연결하다
추상적인 풍경을 통해 내면의 삶과 세상을 깊게 연결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작업에
서 나타나는 것들, 특히 자연에서 느끼는 놀라운 감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디지털 시대에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많은 디지털 이미지를 보고 있지만, 정작 본질은 놓치고 있다. 짧은 시간에 피상적인 것들
만 보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보는 것이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감각을 다시 깨우기 위
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이미지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카메라 없는 사진’이 하나의 대안
이 되지 않을까. 카메라가 없다면, 이미지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이 제어되기 때문에 본
질에 다가가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Susan Derges 영국 출신 사진가다. 자연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상상력과 시각을 발견할 수 있는
포토그램 작업으로 유명하다. 첼시예술대학과 슬레이드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빅토리아 앤 알버
트 미술관(런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뉴욕), 하라미술관(도쿄)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www.susanderg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