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PhotoView Issu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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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실체, 김정언의 <반짝반짝 모멘트>
글 : 최연하(전시기획, 사진비평)
김정언이 돌아왔다! 2002년 <By Myself>개인전 이후 꼭 12년 만이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작품 ‘By Myself’는 하프 프레임 카메라로 촬영하며 35mm필름에 나와 가족, 나와 친구, 나와 나의 이
야기를 병치시켜 보여줬다면, 이번 전시 <반짝반짝 모멘트>에서는 자기의 분신을 만들었다. 자기로부터 시작하
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 재귀의 시간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상이다. 일상의 시 공간 안에서 밥 먹고, 잠자
고, 텔레비전을 보고, 차를 마시는 ‘나와 나의 분신’의 이야기, 혹은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주제이다. 작가의 고유
한 개성이 발원하는(풀어지는) 곳은 익숙함이 번지는 자기만의 방이자, 우주의 중심이다. 상상의 나와 현실의 내
가 일치하며 지금 여기로부터 슬며시 벗어나 무한히 확장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이것은 반드시 나로 하여
금 나와 함께 태어나는 나르키소스의 변화의 운동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나-김정언의 분신은 스팽글조각이다. 일상의 많은 질료 가운데 작가는 왜 스팽글로 분신을 만들었을까.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이되 조금만 건드려도 잘 떨어지고 미끈하면서 까칠하고 유연한 듯 딱딱한 이 속성은 손
에 닿을 듯 잡히지 않는 사랑의 대상 같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스팽글)는 다만 나의 반영만 보여줄 뿐이다.
나-작가를 본뜬 스티로폼조각에 스팽글을 입힌 반짝이는 분신은 나인 것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다만 나-작가
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스팽글여인은 일상의 존재이면서도 불사의 존재라는 것이다. 작가는 분신을 창조하기 위
해 꼬박 2주에서 3주 동안 반복적으로 스팽글을 붙인다. 끝없는 페넬로페의 뜨개질처럼, 곧 탄생할 새로운 도플
갱어를 꿈꾸며 하나의 완성된 시간을 기다린다.
‘파란색의 밥 먹는 아이, 연두색의 소파에 앉아 있는 아이, 황금색의 잠자는 아이, 빨간색의 길을 걷는 아이…’ 서
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이 둘은 반복적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진이라는 특이한 시간대에 놓여있다. 누구
에게도 줄 수 없는 자기 몫의 삶의 자리, 온전히 그 자신만의 것인 부정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서로를 위무하며. 나
보다 더 크게 보이거나 나보다 아름답게 빛날 때도 있지만, 그녀-스팽글분신은 메아리처럼 작가의 주위를 맴돈다.
어느 날엔 그가 나를 견인하기도 하고, 나-작가가 그를 다른 장소에 가져다 놓기도 한다. 서로를 바라보고 유혹하
며 하나의 자장 속에 다른 극으로 머무는 것. 나와 분신은 이화와 동화를 번복하며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 둘은 “
자신을 살아 있는 유일한 자아로 구성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동일한 것으로서 자기 자신과 관련시키기 위해, 살
아 있는 자아는 필연적으로 자기 내부로 타자를 영접하게” 된다. 결국 작가의 이 분신은 떼어낼 수 없는 혹이고,
없어서는 안 될 내 안의 나이자, 나도 모르는 타자이다. 이 분신으로 인해 ‘반짝반짝 모멘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다. 어깨가 뻐근하고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스팽글을 붙여가며 자기의 분신을 만드는 것은 결국 덧없이 흘러가
는 무(無)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무엇으로도 통합되지 않는 특별한 시간에의 염원이다. 통상의 시간의 흐름이 어
제로부터 내일로 흐른다면 김정언이 스팽글을 붙이며 또 다른 나를 바라보고 그가 내 안에 머물 수 있도록 공백
을 만들어주는 시간은 스팽글조각이 그러하듯 사라지지 않는 시간이다. 사진도 그렇다. 한 번 발생한 일도 사진
속에서는 계속 생성된다. 김정언이 스팽글조각-분신과 함께 사진 찍는 행위도(어쩌면 꿈과 환상일지라도) 자신
의 사진-공간을 유지하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마침내 그 둘은 사랑의 육체처럼 떼어낼 수 없는 한 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