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월간사진 2017년 4월호 Monthly Photography Ap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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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3 People
사진에 영원히 잠들다
얼마 전, 중국 사진가 렌항이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의 마지막 전시 소식과 함께 우리에게
는 덜 알려진, 못다 핀 꽃이 안타까운 사진가들의
작업을 만나보자. R.I.P 에디터 | 박이현 · 디자인 | 전종균
렌항, 별이 지다 동성애, 에이즈 같은 금기된 주제를 대담하면서 우아하게 다뤄 ‘퇴폐적 낭만주의’
지난 2월, 전 세계 모든 젊은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준 사진가로 평가받는 렌항(Ren 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사진가다. 작업 주제만큼이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Hang)이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20대 후반인 그는 인생 대 까닭일까. 그는 마흔세 살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반면, 프란체스카 우드만
부분을 우울한 감정에 휘둘려 살았다고 한다. 때로는 우울의 감정이 예술가의 창 (Francesca Woodman)은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셀프 사진으로 표현한 사진가다.
작 활동에 원동력이 된다지만, 아무래도 그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무거운 짐을 견 메이플소프보다 잔잔하면서 회화적 색채가 짙은 그녀의 누드 사진은 자신의 존재
디기가 버거웠던 것 같다. 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자신을 옭아매는 작업에 영
렌항은 자국인 중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사진가였다. 마오쩌둥 이후의 젊은 세대 향을 받았는지 그녀는 스물세 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간의 내면의 심
들을 촬영한 초상사진이지만, 사진 수위가 꽤나 높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국가 연을 다루는 작가들은 왜 대부분 단명하는 것일까. 자아와 타자를 이야기했던 일
에서 노골적으로 성(性)을 이야기하는 그의 사진을 달가워할 리가 없었을 터. 실제 본 사진가 시게오 고초(Shigeo Gocho)도 서른여섯 살에 심부전증으로 요절했다.
로 중국에서 작업을 할 때는 늘 검열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 또한, 제주도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데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김영갑은 루게
의 사진에 열광했다. 동양적 요소가 가미된, 벗은 몸을 기괴하고 기막히게 묘사한 릭병으로 마흔여덟에, 긴장감 넘치게 한강을 표현한 흑백 파노라마 사진으로 주목
그의 사진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최근엔 유명 패션 브랜드의 화보 작 받았던 오영철은 스물일곱에 숨을 거뒀다. 패션 분야에선 배우 하정우와 좋은 궁
업까지 도맡아 할 정도였다. 합을 보였던 사진가 보리가 뇌출혈로 나이 마흔에, 반항적인 유스 컬처를 폴라로
관능적인 렌항 사진은 우리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마치, ‘계속 사진만 보지 말 이드로 거침없이 담아낸, 슈프림과의 콜라보로 유명한 대시 스노우(Dash Snow)
고 우리 곁으로 와서 함께 놀자’고 유혹하는 듯하다. 그에겐 ‘퀴어 사진가’라는 타 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보도사진 분야에서는 케빈 카
이틀이 붙어 있다. 사진 전반에 흐르고 있는 짙은 동성애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터(Kevin Carter)와 로버트 카파(Robert Capa)를 꼽을 수 있다. ‘독수리와 소녀’
하지만 실제 그는 그런 코드를 갖고 작업하진 않았다. 친구들과 놀며 소위 ‘필’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카터는 소녀 생사와 관련된 비판을 견디지 못해 자살
꽂힐 때마다 셔터를 누른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결과물이다. 잠시라도 사진 했고, 카파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던 중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
과 떨어져 있으면 인생이 지루했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 없이 사진을 찍었다고 한 이외에도 요절한 사진가들 중에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도 제법 있
다.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촬영한 경우는 드물었으며, 모델의 포즈와 소품 역시 다. 먼저, 에두아르 르베(Edouard Leve)는 프랑스 개념사진가다. ‘연출사진의 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통 안에서 명확한 허구적 요소를 지닌 사진 연작을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스웨덴 스톡홀름 포토그라피스카(Fotografiska) 뮤지엄에선 렌항의 전시 무표정한 등장인물들 탓에 사진 속 텍스트가 잘 읽히질 않아 혼란스러운 것이 특
<Human Love>(~4.2)가 진행 중이다. 아마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 전시 징이다. 그는 작가로도 활동했는데, 마지막 작품 <자살>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기
는 그가 살아있을 때 기획된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될 것이다. 당분간 렌항과 관련된 고 열흘 뒤 자살했다. 오사카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아마추어 사진가였지만, 전
모든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 후 세대 일본 최고의 사진가로 손꼽히는 나카지 야스이(Nakaji Yasui)도 있다. 다
업을 볼 수 없겠지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 속 주인공들의 야릇하면서도 양한 사진적 실험으로 탄생된 그의 작품들은 모리야마 다이도 같은 현대 일본 사
신비스런 몸짓은 지금 이 사진들 속에 영원히 박제될 것이다 진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촉망받던 사진가 박건희도 있다. 그의 사진은 비극적인 장면을
못다 핀 꽃 한 송이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진 않지만, 왠지 모를 죽음의 향기가 잔잔히 풍긴다. 일찍이
신(神) 역시 뛰어난 감각을 가진 사진가들의 재능을 질투하는 것일까. 렌항 외에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사진에 반영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과로로 인한 심정지로 생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등장했지만,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사진가들이 있다. 을 마감했다. 박건희는 우리나라 사진사의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진가이다. 그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사진가는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다. 의 사진을 보라. 지금 활발히 활동 중인 사진가들의 톤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