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월간사진 2018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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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Tree... #10>, 2017
캔버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누군가는 이 사진을 그림 같다고도 하고, 또 캔버스 위에 흰색 잉크를 떨어뜨려 ‘아무 것도 없지만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
다른 누군가는 ‘시(時)적’이라고도 표현한다. 서정적이라서 더욱 강렬했던 이 <나무> 사 는 다소 실험적인(!) 작품도 있고, 캔버스 자체의 물성을 관람객들이 직접 경험해볼 수 있
진은 이명호를 인기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직까지도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꾸준 도록 한 설치작업(미제 연작)도 선보인다.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나무 시리즈를 보다 확
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 그가 12월 5일부터 2019년 1월 6일까지, 갤러리현대에 장된 개념으로 완성한 작품도 기대가 된다. 전작들이 인간의 시점인 수평적 시선으로 나
서 개인전을 갖는다. 토마스 스트루스(Thoma Struth) 이후 한동안 사진전이 열리지 않 무를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신(神)의 시점인 수직적 시선으로 대상을 담아냈다는 것.
았던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자그마치 8년 만에 선보이는 ‘사진전’이다. 그리고 개인적으
로는 얼마전 교수직을 사임하고 전업작가로 컴백한 이후 처음 갖는 전시라서 더욱 의미 재현과 재연 그리고 확장
가 있다. ‘신작이 나올 때가 됐는데...’하며 궁금해 했던 팬들에게는 길다면 긴 시간, 그간
다져온 내공을 오랜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펼쳐 보이는 자리다. 사실 이명호는 사진을 똑똑하게 현장에 적용하고, 더욱 다채롭게 응용하는 사진가다. ‘캔
기대감,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작업 <나무> 시리즈는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 버스 위 이미지’라는 그만의 트레이드마크를 아주 영민한 방식으로 이러저런 프로젝트에
게 각인된 그의 대표작이다. 두 번째 작업 <신기루>에 이어 이명호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녹여내고, 또 옮겨놓는 것. 어쩜 그렇게 흥미롭고 다양한 프로젝트로 확장시킬까, 의아할
금 확인시켜줄, 세 번째 프로젝트가 드디어 공개된다. 세간의 크나큰 관심을 온몸으로 감 정도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캔버스 앞에 모델로 세운 ‘플레이어 프로젝
내해야 했던 이명호는 과연 어떤 결과물로 관람객들을 맞이하게 될까. 트’도 그랬고, 얼마 전 시각장애인들이 촉지도와 점자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
도록 만든 ‘감각을 깨우다’ 작업도 그렇다. 올해 진행한 샤토 라호크(Chateau Laroque)
와의 라벨 협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와인 브랜드 중 하나인 샤토 라호
텅 빈 캔버스가 말하는 것 크의 제안으로, 한정된 와인 보틀 라벨에 이명호가 현재 로케이션을 통해 제작한 작품을
입히는 프로젝트다. 어떤 작품이 라벨에 등장할 지에 대해 사람들은 쉽게 예상했다. ‘캔
이번 전시 타이틀은 Nothing, But. 뜻을 풀어보면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이다. 상당히 버스 앞에 포도나무를 세우고 촬영하겠지.’라고. 하지만 작가는 주변의 예상을 보란 듯이
의미심장하다. 전시 광고를 통해 이미지를 먼저 접했다. 해변에 덩그러니 놓인 빈 캔버스. 뛰어넘었다. 하얀 캔버스를 레드와인으로 염색한 다음 포도밭에 설치해 촬영했다. 와인
그런데 나무도, 그 무엇도 없다. 전시 제목과 연결 지어 컨셉트를 추측해본다. ‘보이는 것 을 작가만의 색다른 방식으로 ‘재현’한 셈이다. 그렇게 완성된 스페셜 에디션 와인은 전
은 없지만, 그 너머에 무언가 있다는 뜻인가?’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나, 명 세계 1백병 한정 판매된다. 보틀에는 에디션 넘버와 작가의 사인이 새겨져 있고, 그중 일
민한 작가는 이토록 심플한 제목에 너무도 많은 의미를 함축시켜 놓았다. 부가 국내에 들어온다. 물론 전시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미지를 그린다는 것, 사진을
<나무> 시리즈가 현실 속 대상인 나무를 흰 캔버스 위에 ‘재현’한 작업이라면, <신기루>는 찍는다는 것. 그러한 개념과 형식을 현장에 맞게 적용하고 흥미롭게 응용해낸 사례다.
‘재연’에 가깝다. 사막 한가운데 기다란 캔버스를 설치해 보일 듯 말 듯, 현실에는 존재하 종종 기존의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전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진가들이 있다. 줄곧 캔
지 않는 신기루를 만들어 보여준 것이다. <Nothing, But>은 그 뒤를 잇는 세 번째 개념, 버스를 활용하는 그에게도 이런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의문과 기대에
그중에서도 첫 번째 시리즈다. 이번 전시에 대해 이명호는 “재현과 재연, 그 사이 또는 그 대해 이명호는 단호한 입장이다. 그는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하나의 실로 꿰어져
너머의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진 속 캔버스는 텅 비어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보는 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캔버스가 그 중심을 관통하는 실이다.”고 말한다. 명쾌하
이에게 상상의 여지를 제공한다. 텅 빈 캔버스를 보며 그 뒤편에 무엇이 있을까, 각자 마 고 소신있는 답이 아닐 수 없다.
음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캔버스 톱 가수에겐 히트곡이 있다. 하지만 하나의 히트곡이 끝은 아니다. 해피엔딩은 더더욱 아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니다. 사람들은 으레 ‘더 센’ 히트곡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스타 작가에게도 마찬가지다.
텅 빈 캔버스라니. 전작들에 비해 이미지에서 오는 임팩트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기대, 어쩔 수 없는 부담감을 떨쳐내려면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그런 우려에 대해 이명호는 시장이나 평단의 반응에 연연하기보다, 작가로서 하고 싶었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마이웨이(My way) 말이다. 에디터
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겠다며 소신을 내비친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이명호는 아주 는 그런 자신감을 작가의 눈빛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 마이웨이를 응원하는 바다.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 이 모든 시리즈들의 밑그림을 그려놓은 듯 보인다. 그것도 아주 견
이명호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세워 촬영한 <나무> 연작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을 중심으로 설치, 조
고한 모양새로 말이다. 그간 여러 번의 전시를 아우르는 <사진-행위 프로젝트>가 그것을
각, 영상 같은 매체로 외연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라이카(Leica)를 비롯해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홍
말해준다.
보대사로 활동하며, 현재 뉴욕 요시밀로 갤러리(Yossi Milo Gallery)와 서울 갤러리현대 전속작
기존 히트작과 신작이 포함된 전시의 면면을 보면 사진, 설치 그리고 영상까지 다채롭다. 가이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