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월간사진 2018년 9월호 Monthly Photography Sep 2018
P. 50

(096-101)더포토_최종_월간사진  2018-08-21  오후 8:29  페이지 100





































                                         Baklava #11, digital c-print, 2016





               잠시 나와 내 주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아보도록 만드는 사진이 있다. 이재욱 작         철저한 사전준비
               가의 <It’s not your fault> 시리즈다. 개인의 고통과 고민을 이야기한 전작부터 개인-
               사회로 관점을 넓힌 이번 시리즈, 그리고 개인-국가의 상관관계를 다룬 현재 진행 중인          작업 현장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소니 A7R II 카메라와 삼각대가 장비의 전부였다. 조
               작업까지, 그의 시선은 일관성 있게‘너’, ‘나’, 우리 개개인을 향해 있다. 작가의 시선이      명을 설치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별다른 장치 없이 작업을 진행했음에도 그의 사
               머문 곳은  공허함이 어린 조용한 풍경이거나, 그런 풍경 속에 덩그러니 놓인 사람들이          진이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이유는, 머릿속으로 이미 완성된 그림을 그려놓고 그 이미
               다. 그들은 시든 장미꽃을 든 채 담배를 피거나, 파란 비닐봉지를 팔에 걸고 씁쓸한 표         지를 실현하는 등 사전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꼼꼼히 구글 스트리트뷰를
               정을 짓거나,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도로 한복판에 힘없이 서 있기도 한다. 이처럼 나         확인하고 물색해 놓은 장소에 가서 답사를 하고, 또 적당한 시간대의 빛 세기, 프레임과
               른하고 외로워 보이는 개인들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구도 등을 세심하게 체크했다. 그러나 미리 구상한 위치에서 원하는 표정과 포즈를 취
               이재욱은 제10회 KT&G SKOPF 올해의 최종 작가로 선정되어 약 7개월의 멘토링 과        하는 사람을 만나기까지는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가끔 모델을 섭외하기도
               정을 거쳤다. 그렇게 완성시킨  작품 <It’s not your fault>를 9월 9일까지 KT&G 상상마  하지만 대부분 자연스러운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무작정 기다림을 택한 적도 많다. 심
               당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그동안 독일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전            지어 같은 장소에서 반나절을 기다려도 며칠 동안 허탕만 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고 한
               시에 큰 기대감을 보였다.                                           다. 이재욱의 사진을 보고 연출사진인지 아닌지 물었을 때 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고 답했다. 형식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작
               개념적 다큐멘터리가 의미하는 것                                        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독일, 그리스, 터키, 그리고 한국에서 촬영된 이 작품은 위태롭고 불합리한 사회의 궤          위로의 심벌
               적을 따라간다. 작가는 거주하던 독일 북부지역에서 이민용 가방을 짊어진 난민들을
               자주 목격했다. 수많은 난민들이 어디서 왔는지 의문이 생긴 그는 터키와 그리스를 거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씁쓸하고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다. 힘없이 축 처
               쳐 유럽으로 올라오는 난민들의 이동 방향을 역으로 쫓아갔다. 한국에서도 그는 정치            진 어깨와 푹 숙인 머리를 보면 내면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풍경
               이념과 사회 갈등 같은 불안한 현상들을 마주했다. 그러나 그 궤적을 따라가다 만나게           속 사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반면, 이미지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
               되는 장면은 의외로 저널리즘 사진처럼 드라마틱한 사건 현장이 아니다. 비판적인 시            다. 피사체와 공간에서 ‘반전’이 존재하는데, 바로 이 점이 이재욱의 사진을 주목하게
               각이 투영된 사진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의 불안은 장면 기저에만 깔려있을 뿐, 그저 담         하는 요소다. 작가는 온화한 빛, 부드러운 색감, 조형적인 구도, 사진의 미적인 요소를
               담하게 바라본 일상 풍경이다. 그리고 이름 모를 이의 쓸쓸한 모습만이 사진에 등장한           최대한 이미지에 담아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본래 사진을 대할 때
               다. 그 장면은 고요하고 심지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미감을 중시하는 작가적 성향이고, 또 하나는 이 작업을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
               이재욱 작가에 의하면 이 작업은 본질적으로 ‘개인’을 향해 있다. 그는 국가와 사회에          기 위한 의도다. 그의 작품 속 고독해 보이는 개인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공
               위기가 닥치면 결국 그 무게는 가장 약자인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국제 금융          감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심벌이자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 있는 은유적 대상이
               위기로 촉발된 유럽의 경제 상황, 난민 사태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 등이 그         다. 온전치 못한 사회 안에서 상처받는 대상이 내가 될 수도, 혹은 내 주변인들이 될 수
               예다. 작가는 그러한 위기 속에 놓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사건의 흐름          도 있다. 이재욱은 이 사진을 통해 위로가 필요한 불특정 다수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
               이나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는 전통 다큐멘터리 사진과 달리, 이재욱의 사진은 누군가             야(It's not your fault)’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의 순간을 은유적으로 잡아낸다. 불행해 보이는 사진 속 사람들은 결국 작가의 의도에
                                                                        이재욱 개인에 초점을 맞춰 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낭만주의적 구도로 포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따라 재해석된 인물들인 셈이다. 그런 그의 사진을 ‘개념적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
                                                                        그동안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으며, 제10회 KT&G SKOPF 올해의 최종작가로 선정되어 첫 개인전
               르로 명명하는 이들도 있다. 사회와 개인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관점에 방점이 찍혀 있
                                                                        <It’s not your fault>(2018.8.9~9.9)를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연다.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교
               기 때문이다.                                                  사진미술 석사를 졸업했다.

                                                                     100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