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고윤정작가 e-book 2022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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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웅 평론(국문)
고윤정의 신작 <Sublime> 시리즈에 부쳐
최근작 숭고<Sublime> 시리즈는 검정 캔버스, 번쩍이는 금속판 등의 재
질을 배경으로 하여, 표면의 재질감과 색상을 중시하고 여기에 더하여 질
료의 성격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구도는 우
연을 가장하여 형성된 것으로 얼핏보변 간단하면서도 미묘하게 시선을
당기는 시각적 효과를 유도하며, 각각의 작품들은 사람이나 동물 등의 특
정한 이미지가 드러나기도 하고 숨겨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림을 받
치는 배경에 의해서 회화의 방향이 결정되는데, 거의 반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블랙이 이미지를 앞서기도하고, 이미지와 자연스런 기법들이 부각
되기도 하여, 이에 준하는 미묘하면서도 절제된 색상을 통해 새로운 추상
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사용하는 기법은 단순그리기, 흘리기 번지기 혹은 여러 유형의 기법을 적
절하게 혼용하여 색의 병치 및 배합 등의 조합 등인데, 이 가운데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효과는 반복적으로 쌓아올린 물방울과도 같은 색의 축
적이다. 그것은 시간과 인내의 상징으로서 단순한 물감이 아닌 삶의 에너
지와 자연 소재의 어우러짐일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지닌 물성의 특정한
속성이 녹거나 굳는 과정에서 마치 우주 탄생과도 같은 영원성의 상징적
기호가 된다.
이러한 작가의 주요 표현방식의 근간에는 평소 다져온 작가의 인생에 대
한 가치관이 녹아있는데, 그것은 최근에 인류가 번성하면서 훼손한 대자
연과 인류문명의 화해를 비롯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숭고함을 상징적으
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각각의 작품들은 마치 하나의 인격체
처럼 고유의 가치를 지니며, 숨은 그림처럼, 인체나 자연의 형태를 은은
하게 드러내어 인류의 아름답고 숭고한 삶을 찬미하는 메시지가 담긴 참
신한 미학이 은유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2022년 봄
박기웅 (미술학박사, 전 홍익대교수)
K O Y U N J U A N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