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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그때 그시절
전차(電車)
“집채만 한 쇠 당나귀가 한꺼번에 20명씩 사람을 싣고 가요!”
1899년 5월 17일, 난생처음 전차를 본 사람들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목청 높
여 소리 질렀다. 일본의 교토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개통된 서울의 전차
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전차가 서울 거리에 등장한 것은 1899년 5월이었다. 경희궁 앞에서 청량리까지 운행된
동대문 전차차고에서 열린 개통식을 보려고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었고 전차가
전차는 능행(陵幸)용 황실 전용차 외에도 창문이 달린 상등(上等)차와 지붕만 있는 하등(
가는 길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下等)차 두 종류가 있었다. 1900년 4월 13일자 제국신문은 ‘밤마다 종로에 사람이 바다
같이 모여서 구경하는데 전차표 파는 장소를 보니 장안의 남자들이 아홉시가 지난 후에
문이 미어질 정도로 새문(서대문) 밖에 갔다 오는 표를 주시오, 홍릉 갔다 오는 표를 주시
오 하면서 다투어 가며 표를 사 가지고 일없이 갔다 왔다 한다’고 보도했다.
당시 전차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유교의 해묵은 도덕률에 금이 가게
만든 ‘문명의 전도사’이자 자본주의 상품의 달콤한 유혹도 전파한 ‘일제침략의 첨병’이기
도 하였다.
문어발처럼 용산·남대문·을지로·왕십리 등으로 뻗은 전차 노선은 1930년대에는 출퇴근
시간이면 학생·청년들로 콩나물 시루처럼 붐비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잡았고 광복 이
후에도 여전히 서울시민의 발이었다.
1950년대를 풍미한 은방울 자매의 히트곡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는 급격
▼ 여름에는 비가 들이치고 겨울이면 삭풍에 몸을 웅크려야 했던 대
한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1968년 11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제국 시기의 하등(下等) 전차. 1910년 상자형 전차가 도입되면서
개방형 전차는 퇴장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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