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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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는 주제니까, 일종의 비즈니스선교의 교과서로 편집 방향을 잡는 거죠. 경
험과 이론을 겸비한 똘똘한 책이 될 것 같은데요.”
“그렇죠? 아무래도 하는 게 맞겠지요? 어떤 조건을 보든 이 책은 우리 신문사에서 하라는 뜻인
것 같아요. 그럼, 우리 기도하면서 한 번 도전해보는 것으로 해요.”
그렇게 원고를 건네 받았다. 일 앞에 두고 못 앉아 있는 못된 성미 탓에, 건네 받은 그날부터 어
마어마한 양의 원고와 끙끙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최웅섭 선교사는 사업의 ‘사’자도 모르고 사
업가 선교사가 되었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래도 선교사 신분이었으니 50% 먹고 들어간 셈이
었다. 나는? 선교의 ‘선’자도 모르고, 사업의 ‘사’자는 더더욱 모르니, 이것을 어찌하리요 싶었다.
게다가 믿음까지 나약하기 그지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주제에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게 ‘우리가
해야 된다’고 했는지, 나의 그 언행도 웃겼다. 그렇다고 이제와 무를 수도 없었다.
일이 조금씩 진척될수록 걱정거리가 더 생겨났다. 워낙 머리를 안 쓰고 산 지 오래라, 뇌에 이끼
라도 낀 탓인지 앞에 읽고 돌아서서 뒤에 읽으면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주제에 맞추어 원고
를 재구성하려면 실시간으로 모든 내용을 기억하고 떠올려서 붙이고 떼고 하며 재배치를 해야 하
는데, 그것이 안 되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뇌를 꺼내 맑은 물로 샤워를 시킬 수도 없고, 그렇게
사투를 벌이면 벌일수록 요상한 시험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편집장과의 대화에서 내가 어떻게든
편집장을 설득했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장이 어떻게든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만든 고단수를
썼던 게 아닌가, 그래서 나를 이렇듯 잠 못 들고 지치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은. 헐~!
안 되겠다 싶었다. 같이 진행 중이던 다른 모든 일을 일단 접기로 했다. 지은이, 최웅섭이라는 사
람이 되어보기로 하고, 비즈니스선교 원고에만 감정을 올인해서 몰입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기
도와 말씀을 함께 가지고 가기로 했다. 지금 하는 일이 단순히 원고의 재구성이나 편집 일이 아
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고 편집해나갈 때마다 그 자체가 예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 책이 나올 때쯤이면 이 초보신자가 주님 앞에 성큼 다가서 있기를 소망했
다. 물론, 새중앙신문사의 편집장님과 간사님들, 여러 봉사자님들의 중보와 응원도 힘이 되었다.
몸이 지치고 피곤해서인지 교묘한 것들의 방해공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을 진행하면서 두
번의 숨가쁜 가위눌림이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짜증 대마왕’으로 등극했으며, 거의 한 달
여 동안 외식 또는 대부분 밥, 국, 김치로 삼시 세끼를 때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진행한 것에 감사했다. 원고를 한 장씩 털어낼 때마다 참으로 기특한
생각들이 몰려왔고, 또 그 생각들을 짚어가다 보니 최웅섭이라는 인물을 통로로 주의 능력을 바
라보게 하심을 느꼈다. 하나님이 들어 쓰신다는,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임재한다는, 하
나님이 하고자 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이런 표현들을 두고 ‘참~ 교회스럽다’ 며 삐딱하게 바라
봤던 나에게 주님 ‘껄껄껄’ 웃으시며 ‘이 녀석아, 이래도 못 믿겠냐?’ 하시었다.
무엇보다 비즈니스선교에 대한 2년여의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듯 자신감이 샘솟으며, 왠지 실행
에 옮기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도전의식이 마구마구 솟구쳤다. 이름하여, ‘최웅섭효과’라 부르기
로 했다. 일단 책을 여는 순간, 멈출 수 없이 읽어내려 가게 될 것이다.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야
기를 끝내고 책을 덮는 순간, 이미 ‘최웅섭효과’에 빠져든 후가 될 것이다. 비즈니스선교가 창의적
접근지역을 여는 마지막 열쇠로서,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지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
만, 비즈니스를 향한 열정과 선교에 대한 소명을 함께하라는 그의 제안은, 보다 따뜻하고 풍족한
복음의 영향권 아래로 세상을 집결시키는 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2013년 1월 26일 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