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한눈으로 보는 오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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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하고 강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살았다. 그래서                                                               한눈으로 보는 오산역사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초보적인 농경을 수반한 수렵채집사회로

                        보고 있으며, 청동기시대부터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이해하는 것
                        이 일반적이다.

                        신석기시대 오산 사람들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오산의 신석
                        기유적은 경기문화재연구원과 서경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

                        한 가장동유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집터 1기와 토기 등 무언가
                        를 불로 구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성시설 1기, 구덩이 1기가 보

                        고되었다. 집터는 나무가 타고 남은 목탄 시료를 대상으로 한 방
                        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서기전 2,800~2,500년 경에 존속했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소성유구는 서기전 1,886년~1,756년의 값
                        이 나왔다. 두 유구 모두 신석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연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구덩이에서 나온 바닥이 편평한 빗살무늬 평저토기에는

                        점렬모양의 타래문이 시문되었고, 문양을 구분해서 새긴 구분
                        문계 토기들이 함께 나왔는데, 이와 유사한 토기는 서울 암사

                        동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암사동과 가장동 구덩이 출토 토기
                        는 문양 구성과 배치, 시문기법, 기형 등이 유사하며, 서기전                  과 배합하여 청동기를 주조하는 기술은 고도의 숙련도와 전

                        4,000~3,600년 또는 4,500~4,000년으로 편년되는 유물이다.           문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석기만을 사용
                        이와 같이 오산의 신석기문화는 가장동유적의 집터와 구덩이 등                   하던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업의 전문화, 교역의 발달,

                        과 그곳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를 통해서 매우 단편적인 내용만                   계층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혁신적인 변화가 있게 된다.
                        을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점렬상의 타래문이 시문된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와 마제석기가 보편적

                        평저 빗살무늬토기는 서울 암사동 신석기유적의 이른 시기의 유                   으로 이용되고 청동기를 제작 사용한 시기로서, 고인돌과
                        물과 관련되는 것으로 중서부지역 신석기시대 전기에 속하는 것                   같은 정형화된 무덤이 등장하고 농경을 주요 생계경제로 하

                        이다. 자료는 적지만 오산 가장동유적은 암사동유적과 더불어                    면서 사회복합도가 한 층 높아진 시대를 가리킨다. 공간적
                        중서부지역 최초의 신석기인들이 남긴 물질자료로서 그 가치는                    으로는 한반도 전역이 포함될 뿐만 아니라 라오닝(遼寧)지

                        매우 높다.                                              역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 그리고 그와 인접한 지역과 밀
                        청동기시대는 덴마크의 톰센이 제안한 석기·청동기·철기시대                     접한 관련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문헌의 내용과 고인돌, 비

                        로 구성된 삼시대 체계 중의 한 시대로 신대륙에서는 사용되지                   파형동검과 세형동검, 미송리형토기와 팽이형토기, 점토띠
                        않지만 구대륙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시대 개념이다.                   토기 등을 근거로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의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한 후 주석, 아연, 납 등 몇 가지 다른 금속               형성과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로서 매우 중요하다. 청동기
                                                                            시대의 시간적 범위는 상한 연대를 서기전 1500년으로, 하

                                                                            한 연대를 서기전 300년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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