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하나님이 주신 멍석에서 멋지게 놀아라(최웅섭이야기)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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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고, 거리의 광고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교회에서 강도사로 일하던 시절, 터키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

            전화를 해서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                                                       던 지금의 아내를 인터넷으로 만나 교제했다. 얼굴도 안 보고 결혼

            가려고 하면 왜 그리도 서럽고 막막하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하기로 하고, 딱 한 번 만나 후원하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3
            세상에서 가장 ‘백’ 좋은 아버지를 둔 아들이 맞기나 한가, 스스로가                                                     살 연하의 여인, 그녀 또한 얼마나 불안했는지 잘 안다. 선교사 남편

            참 한심스러웠다.                                                                                  이 성경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복음 한마디라도 더 전해야 하는

              ‘이리도 방황하러 이곳 이국만리로 날아왔던가!’                                                               데, 제품 전단지나 들고 업체를 찾아다니고 있으니 전도사 출신 아

              ‘사업을 위해서 선교사로 온 것인가?’                                                                    내의 속이 얼마나 탔을까! 저녁마다 서재에 엎드려 드리는 기도와
              ‘목사가 이 낯선 땅에서 이 낯선 일로 헤매야 한단 말인가?’                                                       새벽마다 부르짖는 기도는 사실 기도가 아니라, 통곡이었고 절규였

              쏟아지는 눈물을 수없이 삼켰다. 비자 만료 기한이 다가올수록 조                                                      다.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여오는 압박에 대한 서러움과 고통은, 아마 아내도 같이 동역했던                                                          파트너를 만나러 다니는 일에서 구매자를 만나 제품을 소개하고

            사람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야 했다. 가                                                      계약까지 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계약을 할 듯
            야만 하는 길이라면 눈물을 흘리더라도 가야 했다. 이런 ‘깡’이 어디                                                     말 듯하며 사람 피를 말리는 사람들, 대답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고의

            서 나왔을까, 요즘 다시 생각해보곤 한다. 발 등에 떨어진 불 앞에서                                                     적으로 질문을 퍼부어 대는 사람들, 이들을 하루 종일 상대하고 집

            기도도 못하는 부족한 선교사였지만, 그래도 선교사였기 때문이었                                                         으로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되고 기도가 한숨이 되어 흘러나왔다.

            을까?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워온 세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이런 모습으로 이끌고 가십니까? 제 뜻입
            상 모든 선교사들, 과거 모든 선교사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니까? 아니면 당신의 뜻입니까?”

            그 ‘질김’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덕분인 것 같다.                                                           이런 기도 가운데 사투를 벌이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수없이 만남을 청했고, 수없이 만남을 거절당했다. 수없이 서러움                                                      도, 그럴수록 기필코 성공하여 비즈니스의 선교의 모델이 되리라는

            을 겪었으며, 그때마다 이 서러움이 그냥 서러움으로 끝나게 하지                                                        마음속 목표가 더욱 선명해지고 더욱 뜨거워졌다.
            않으리라 다짐했다. 남이야 남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아침에 외출                                                         어려운 사업 속에서도 나는 하나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

            을 할 때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의 잔소리와 원망 담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언어의 훈련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긴 눈초리는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다.                                                                       대화하는 동안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방언과 러시아어를 별도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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