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포트폴리오-조광익
P. 86

조광익 -86-



         무수한 점과 선이 잇대어지며 만들어내는 인왕산의 조화는 그간 다른 작가에게서는 보지 못한 장관이었다. 그 속에는 적어도 전통적인 관

         념산수의 진부함도 없을 뿐 아니라 실경산수의 경직된 형식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온전히 작가 조광익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낸 그만
         의 공간이자 그의 ‘인왕산’이었다. 아마 그가 개성 있는 주목할 만한 작가로 각인된 것은 이때가 아닐까 싶다. 당시 인왕산의 웅장한 기세
         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대작이 서울 시립미술관에 소장됨으로써 그 성과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았음은 특기할 사항이다.

          이후 그는 전통적인 관념에서 탈피하고자 산수를 해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자신만의 산수경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여경’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그의 성취를 개괄하는 상징적인 언어이다. ‘여경’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는 그만의 관념과 이상으로 구축된 공간이다. 그것은 여
         전히 산수의 관념과 수묵의 심미, 그리고 주관의 표출을 위한 조형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것이었다. 전통적인 관념의 탈피를 위해 자신의 새
         로운 관념을 수립하고, 수묵의 일탈을 통해 새로운 필묵을 추구하며 공간 구성의 조화로움을 통하여 현대성을 발현하고자 함이 바로 그것

         이다. 이 과정에서의 작업은 일정한 공감과 객관적인 인정을 받아 5점으로 이루어진 대작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는 영예를 안기도 하
         였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연 새로운 작업으로의 선회를 통해 스스로를 또 다른 질곡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풍토’로 명명된 새로
         운 작업들은 이전의 그것들과는 또 전혀 다른 것이었다. 굳이 어렵사리 일군 성과들을 뒤로하고 다시 끝이 없는 미망의 새로운 길을 나서는

         그의 의지는 그가 정녕 뜨거운 작가정신을 지니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형상을 해체하고 흙물과 수성착색제를 혼용하는
         분방한 작업들은 마치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반복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 축적된 깊이와 수없이 더해지는 문자들의 파편

         들은 이미 특정한 장르로 해설하기 어려운 독특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는 그가 천착해 온 전통과 현대라는 해묵은 화두에 대한 그의 답인
         동시에 스스로 확인한 본인의 개성일 것이다.

          이어 최근의 작업들은 또 다른 파격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한지를 무수히 잘라서 덧붙이는 작업은 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작게 절
         단된 한지의 조각들은 무수한 변화의 단서들을 작가의 조형의지와 재료의 무작위적인 성질이 중첩되고 교차하면서 아련한 형상을 드러낸

         다. 두터운 깊이로 켜켜이 쌓인 시간과 수공의 흔적들은 단순히 재료의 물성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간의 성취와 결과물을 온전
         히 신작들에 투영하여 구축된 완고한 그만의 작품세계이다.

          그는 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비록 재료와 형식이 바뀌고 수묵이 다른 재료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그는 늘 수묵의
         언저리에서 열심히, 또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담보로 한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표현하였다. 그의 ‘환향’은 전통적인 관념산수에서 ‘현

         대 한국화’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과정인 동시에 보편성에서 벗어나 개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한 작가의 분투에 대한 보고인 셈이다.
   81   82   83   84   85   86   87   88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