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조연경 초대전 4. 26 – 5. 13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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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고차원의 패턴 1 60x60x10cm 2021
그렇게 작가는 흡사 시간의 집 혹은 존재의 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속에 원형 형태의 생명성을 품고 있는 사각형
의 집을 지었다.
그렇게 철망에 의지해 박음질 된 실은 이후 점차 철망에서 벗어나 철망 없이 스스로 조형을 일구기에 이르고, 여기
서 비정형의 형태, 유기적인 형태, 우연적인 형태는 더 강조된다. 그 조형 그러므로 비정형적이고 유기적이고 우연
한 형태가 평면을 벗어나 벽면 위로 돌출되면서, 가변 설치를 통해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그림자가 생긴다. 오브제
와 그림자가 실물(감)을 놓고 다투면서 또 다른 허구적 일루전을 만들고(연출하고), 바이브레이션 그러므로 일종의
내적 울림을 암시하면서 조형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작가는 정형과 비정형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렇다면 왜 정형이고 비정형인가. 정형과 비정형의 경계를 넘나
드는 것에는 어떤 의미심장한 의미라도 있는 것인가. 자연이다. 자연의 본성이 그렇고, 자연의 섭리가 그렇다. 자연
에는 주기와 패턴, 규칙과 규율 그리고 질서(코스모스)와 같은 정형의 규준이 있다. 그리고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
력(카오스)의 분출과도 같은 비정형의 기(그러므로 에너지)의 흐름이 있다. 이런 정형과 비정형의, 카오스와 코스모
스의 상호작용이야말로 항상적으로 이행 중인 자연, 운동하는 자연, 변화하는 자연의 작동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
이고, 그 자체 자연이 품고 있는 생명의 비의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조형 원리와 자연의 작동원리를 일치시키는 것에서 작업을 위한 당위성을 찾는다. 그 자체 자연의
섭리에서 조형의 이유를 찾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에 잠재된 자연성을 캐내는(그러므로 자신이 또 다른 자연임을
인식하는)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합과 컵과 받침대(도자의 감아올리기 기법에서처럼 노끈을 돌돌 말아 올려 만든)
그리고 브로치(실과 이후 닥 섬유로 만든 비정형의 우연한 형태)와 같은 쓰임새를 넘어 자연에서 조형 가능성을 탐
색하는 부분이 있고, 자연(성)에 부합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자기반성적인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후 닥 섬유를 만나면서 비정형적인, 유기적인, 그리고 우연한 형태는 극대화되고, 작가의 작업은 또 다른
전기를 맞는다. 주지하다시피 닥 섬유는 한지의 원료로서 균일한 조직을 가진 양지와는 다르게 그 조직이 균질하지
않고, 그 불안정성이 오히려 비정형적이고 유기적이고 우연한, 그러므로 어쩌면 자연(성)에 부합하는, 다시, 그러므
로 작가가 추구하는 작업의 생리에 부응하는 면이 있다. 자연의 본성 그러므로 생명력이 오롯한 경우라고 해야 할
까. 실제로도 사람들은 한지를 살아 숨 쉬는 종이라고 부르는데, 그저 수사적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생명력이 오롯한 자연을 매개로 살아 숨 쉬는 조형을 만든다고 한다면, 그 역시 그저 하는 말만은 아닐 것이다.
보통은 닥나무를 빻아 삶으면 조직이 해체되면서 부드러워지고, 그것을 물에 풀어 채로 떠내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
해 한지를 얻는다. 여기서 작가는 한지로 가기 전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더 거친, 닥나무의 질료가 살아있는, 그러므
로 어쩌면 자연의 본성이 여실한 조직을 건져 올려 원하는 조형을 만드는데, 단품의, 때로 중첩된, 크고 작은 형태를
만든다. 비록 조형이 가능한 계기는 작가가 제공한 것이지만, 정작 조형을 완성한 것은 자연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
므로 반쯤은 자연이 만든 작품이며, 작가와 자연의 합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그저 수사적 표현으로 보기보다는, 그
만큼 자연의 생리에 충실하고 자연의 본성에 귀 기울이는, 작업에 임하는 작가의 태도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여기에 알록달록한 색깔이 덧입혀지면서, 때로 부분적으로 옻칠과 금박으로 장식되면서 작업은 생기를 얻
고 활력을 얻는다. 자연에서 건너온 것들, 그러므로 바람이 부는 것도 같고, 하늘거리는 것도 같고, 숨을 쉬는 것도
같고, 수런거리는 것도 같고, 들뜬 것도 같고, 봄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화사한 것도 같고, 만개한 꽃잎이 자기를 활
짝 열어 생명력을 마구 발산하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자연이 봄의 제전 그러므로 생명의 제전에 초대하고 있다고 해
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