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김연식 초대전 11. 27 – 12. 6 갤러리모나리자 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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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의 회귀 : 정체성의 모색


           - 정산 김연식의 예술세계


           김 광 명(숭실대 명예교수, 미학/예술철학)




           1. 작가의 예술 의지와 삶의 열정
           일반적으로 인식하듯, 필자는 예술가의 삶과 예술은 필연적인 연관관계에 놓여 있다고 늘 생각해 온 터에, 특히 작가 정산(靜山) 김연식
           (金演植, 1946∼ )에게 있어선 더욱 그러함을 느낀다. 작가의 예술 의지와 삶의 열정이 불가분하게 얽혀 있는 까닭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
           다보면, 작가의 예술세계란 그가 자란 가정환경과 분위기가 첫째이고, 그다음 마음의 양식으로 책을 읽으며 받은 영향이라든가 감동을 주
           는 영상, 가슴에 와닿는 음악이다. 이는 삶과 예술의 형성 방향에 크게 미친 힘이다. 전체적으로 그의 삶은 불가(佛家)의 수행 과정과 이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예술에 이르는 길로 압축되며 이는 작가 나름의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한 긴 모색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색의 과
           정은 스스로 느끼며 생각하는 확고한 자기 자신의 상(像)이자, 정체성의 정립으로서 자기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을 담고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교향곡: 인드라망’과 기승전결의 전개 과정
           정산 김연식은 4회에 걸친 <관조+명상> 전(2000-2011)에서 불교적 침잠과 무욕의 세계를 표현하였고, 5회에 걸쳐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 전(2012-2016), 한국과 미국에서 5회의<색즉시공, 공즉시생>전, 그리고 2회에 걸쳐 <드뷔시의 달빛> 전(2011-2012)에서
           는 그의 음악관과 회화관이 하나로 연결됨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음악과 미술은 물론 음식까지도 한 뿌리이고 한 줄기로 연결돼 있다. 볼륨
           이라든가, 콘트라스트라든가, 미디엄이라는 용어가 이 분야에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
           한다는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주로 오선지를 삽입한다든가 악기를 형상화하는 직접적인 표현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나는
           밝고 어두운 것, 길고 짧은 것, 가볍고 무거운 것 등의 대비만으로도 충분히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
           하여 음색의 명암(明暗), 음 지속의 장단(長短)과 경중(輕重)의 대비는 ‘교향곡: 인드라망’이라는 작품 연작으로 귀결된다.
           ‘인드라망(因陀羅網)’은 인도 베다(Veda) 신화에 나오는 비와 천둥의 신인 인드라(Indra, 범어로는 indrajāla)를 웅장하며 위엄 있고 엄숙
           하게 둘러싸며 펼쳐진 그물이다. 이 망의 연결 고리인 교차점에는 보배 구슬이 달려 있어 서로를 비추어 끝이 없는 연기(緣起) 관계를 맺
           고 있다. ‘인드라망’은 화엄경에 등장하는 연기법(緣起法)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연결망인 인드라망을 정산 김연식은
           교향곡의 네 악장 구성으로 유비하여, 앞서 언급한 제1악장 <컵 속의 무한 세상> (2023. 5.21-5.30), 제2악장 <파동과 입자의 드라이브>
           (2023. 6.20-6.29), 제3악장 <스왑> (2023. 9.28-10.7), 제4악장 <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2023. 11.27-12.6)을 전개하고 있다. 아래
           에서 제1, 제2, 제3 악장의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본 뒤, 절을 달리하여 이 모두를 집대성한 제4악장을 상론해 보기로 한다.
           제1악장 <컵 속의 무한 세상>의 작품 전개에서 평론가 고충환은 ‘자연의 지문 혹은 풍경의 지문 같은 것’으로 읽는다. 시간의 연륜이 쌓이
           며 자연스레 형성된 고유함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시적이며 동시에 거시적인 풍경의 중첩된 연상을 본다. 추상과 구체적 형
           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아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가 서로 연결되면서 감각적 현상과 이념적 실재가 혼합하는 경계의 풍경을 보여 준다.
           제2악장 <파동과 입자의 드라이브>는 평론가 이선영이 지적하듯, 색의 입자들이 파동을 이루며 출렁이고 굽이치며 부딪히고 만나는 경
           계들이 유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산 김연식의 작품에서 색은 무한한 입자의 연속성으로 이루어진 파장의 모습이다. 작품의 주요 형식
           은 개별적인 선이나 띠가 아니라 연결된 그물망으로 은유 된다. 거기에서 생태계는 생명의 그물망을 이루며 성장·발전한다. 이미 2014년
           에 제작했던 거대한 구 형태의 설치작품은 1,600개의 투명한 줄에 매달린 면도날 48,000개를 이용해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을 비추고
           있으며, 면도날의 반사면들은 모 든 상을 거울처럼 투영하여 ‘인드라망’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작업은 그린다기보다는
           물감이 궤적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우연이 개입된 과정이다. 이러한 우연의 개 입은 필연으로 이어진다. 마치 생명현상이 우연으로 출발하
           여 필연으로 전개되는 바와 같다. 작가는 “예술의 길이란 도를 닦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예술은 기나긴 인내와 수행의 결과물인 까닭이
           다. 제3악장에서 평론가 김성호는 정산 김연식의 이러한 일련의 시도를 ‘무작위의 작의(作意)를 실현하는 전환의 미학’으로 읽는다. 한국
           인의 미의식에 깔린 ‘무기교의 기교’와 함께 ‘무작위의 작위’라 는 작가의 의도인 셈이다. 이는 우연적인 것에 자연스레 부수된 필연의 요소
           가 어느 정도 가미되는 것이며, 양자 간에는 불교의 연기적(緣起的) 세계관이 맞물려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예술작품은 궁극적으로 생
           성과 소멸, 색(色)과 공(空)이라는 불이(不異)요, 불이(不二)로서 하나의 동일한 의미 연결망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연결망은 얽히고설킨 우
           리 삶의 행로에 다름 아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소통하며 생태적 환경을 이루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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