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김연식 초대전 11. 27 – 12. 6 갤러리모나리자 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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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술세계의 전개와 의미
           첫 개인전(공화랑, 2007) 이후 그는 매년 작품 전시회를 열며 소재와 주제의 변화를 보이고 자신의 예술세계의 지평을 넓혀 왔다. 2010년
           에 북촌에 있는 갤러리 담에서 세 번째 개인전 <관조+명상>을 열면서 <천 강에 비친 달>(높이 5m, 길이 13m) 1) 을 선보였고, 이때 한국에 온
           프랑스 평론가가 그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며 그를 이듬해인 2011년 프랑스 샤랑통(Charenton) 시에서 열리는 제58회 살롱전(Salon de
           Charenton)에 초청했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는 미국 무대로 이어졌다. 샤랑통시의 살롱전을 관람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갤러리
           (Sandra Lee Gallery) 주인이 그의 예술적 가능성과 재능을 알아보고 2012년 초대전 형식의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출중한 연주 실력을
           갖추었고, 사찰음식, 미술,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른바 ‘전방위 예술가’라 칭할 만하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
           향곡 9번’  2) 은 체념과 초월, 내면화의 분위기가 많이 묻어나는 곡으로 정산 김연식에게 특별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
           향곡 9번을 듣고 그 느낌을 화면에 담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9번>(960×240cm)은 조선 초기 화단을 대표하는 인물인 안견(安堅)의 <
           몽유도원도>를 연상하여 재구성한 작품으로, 4만 개의 면도날을 이용해 파노라마 형식으로 초대형 화면에 구현한 것이다. 보는 이를 압도하
           는 규모다. 여기서 우리는 숭고와 장엄의 미를 향수할 수 있다. 말러는 음악 외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음악의 명백한 침묵을 넘어 ‘말’ 하려는 야
           심찬 시도를 한다. 3)  이런 맥락과 시도는 2023년에 선보인 정산 김연식의 <교향곡: 인드라망> 연작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이번 글에서 다루
           는 부분은 특히 제4악장인데 이는 기승전결의 피날레를 의미 있게 마무리한 작업으로, 정산 김연식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셈이다.
           제1악장 <컵 속의 무한 세상>, 제2악장 <파동과 입자의 드라이브>, 제3악장 <스왑>, 제4악장 <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이 그것이다. 일 년
           동안에 펼친 그의 작품세계는 그야말로 그 양과 질의 측면에서, 놀랄만한 예술적 역량의 발휘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 작업은 어느 한 곳에 머
           무르지 않고 정산 김연식 예술세계의 기승전결인 까닭에 그 의미가 더하다고 하겠다. 정산 김연식이 교향곡의 형식을 자신의 예술세계에 도입
           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교향곡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향곡을 뜻하는 ‘Symphony’는 ‘소리의 조화 혹은 성악 또는 기악곡 연주회’를
           뜻하는 그리스어 ‘쉼포니아(συμφωνία)’이다. 이는 ‘조화로운’을 뜻하는 ‘쉼 포노스(σύμφωνος)’에서 나온 말이다. 로마 최후의 저술가요 철학자
           이며 음악 이론가인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는 그의 『음악의 원리 De Institutione Musica』에서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강조했
           다. 그에 따르면, ‘우주의 음악 Musica mundana’, ‘인간의 음악 Musica humana’ ‘도구적 음악Musica instrumentalis’은 서로 연관되며, 우주
           의 질서와 자연에서의 조화는 음악에서 절정을 이룬다. 우주의 소리, 인간의 소리, 음악의 소리가 하나로 모여 조화를 이루는 최상의 경지인 것
           이다. 인간은 우주와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여기에 담긴 정신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동양사상의 관점에서도 오래 전부
           터 공자는 음악을 주요한 덕목인 예(禮)와 더불어 천지조화의 하나로 보고 있는 바, 위의 관점과도 아주 유사하다고 하겠다.
           교향곡의 형식처럼, 작품의 전체구조는 미시적인 분자 세계와 거시적인 지구 모습, 나아가 우주의 모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네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에 유비하여 기승전결로 전개되고 있다. 자연의 생성 및 소멸과 더불어 인간 삶의 흐름과도 비교된다. 소멸은 곧 그
           다음 생성을 위한 준비 과정의 부분이 되어 순환한다. 작가의 음악적 소양과 연관하여 ‘교향곡: 인드라망’보다 10여 년 앞서, 2011~2012년 2회
           에 걸쳐 갖게 된 <드뷔시의 달빛> 전도 주목할 만하다.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달빛>은 인상주의보다는 후기 낭만
           에 더 가까운 곡으로, 들뜨고 떨리는 호흡과 섬세한 감각을 현실에 녹여 표현한 폴-마리 베를렌((Paul-Marie Verlaine, 1844∼1896)의 시, “달
           빛”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시의 끝 구절이‘노래는 달빛에 섞이네.’로 되어 있어 의미를 더한다. 작가의 회화적 유려함이 달빛과 섞여 우리의
           정서에 와 닿아 감동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1) 조선조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노래를 실은 책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부처가 온 세계에 교화를 베푸는 것을 달이 천강에 비친 것에
             비유함.
           2) 프랑스 출신 말러 연구학자인 앙리-루이 드 라 그랑주(Henry-Louis de La Grange, 1924~2017)는 말러 교향곡 9번을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에 대한 명
             상”으로 보았는데, 아마도 이런 관점 이 정산 김연식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3) Andy Hamilton, “Artistic Truth”, Royal Institute of Philosophy Supplement, vol. 71, Oct. 2012, 254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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