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김연식 초대전 11. 27 – 12. 6 갤러리모나리자 산촌
P. 5

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 1                  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 2
                                             80x122cm                         61x80cm
                                         Acrylic on canvas                Acrylic on canvas
                                                2023                             2023










              3. 제1, 제2, 제3 악장의 집대성이자 피날레로서의 제4악장 <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
              정산 김연식에게 제4악장의 작품 제작의 계기가 된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필자와 대화를 나누며 그는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 Il
              Postino, 우체부 The Postman)』(1994)를 떠올린다.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와는 별도로, 아름답고 목가적인 프로치다 섬마을 (Procida,
              나폴리만 북쪽에 위치)의 풍광을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파도, 푸른 물결과 대비를 이루며 흘러가는 하얀 구름, 나뭇가지나 절벽에 부는 바
              람, 이런 바람을 타고 은은히 퍼져 나가는 교회 의 종소리, 밤하늘에 뜬 달과 반짝이는 별이 퍽 인상적이다. 제4악장 <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2023.11.27-12.6)은 앞의 세 악장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여 마침내 조화와 균형의 모습 을 이루어 낸 것으로 보인다. 정산 김연식
              의 예술세계란 “자연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며, 이는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색이
              다. 교향곡에서 제 4악장의 의미란 화려한 피날레를 뜻하기도 하고, 모순과 대립이 해소되고 지양(止揚)되어 하나로 합일되는 경지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생동감의 절정을 이룬다.
              정산 김연식의 제4악장에서 다루는 소재로서의 달과 바람, 그리고 구름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흔히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산과 물이 어우러진 산수(山水)’를 자연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본다. 정산 김연식의 자연은 달과 바람과 구름으로 대변된다. 달은 차고 기
              우는 것이 정한 이치이며, 바람의 움직임 또한 정중동이요, 동중정이다. 지표면의 뜨거워진 공기가 상공의 찬 공기 쪽으로 상승하며 생성
              된 구름은 정지하듯 움직이고 움직이는가 하며 멈춰 있는 듯이 보인다. 지표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수 현상이나 기상현상은 밀려
              오고 밀려가는 구름의 흐름에 의해 발생한다. 이렇듯 자연의 기운을 대변하는 달과 바람, 그리고 구름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려고 하는 바
              는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달’ 혹은 ‘달빛’은 다양한 예술 장르의 보편적인 소재이자 모티브로서 지금까지 이를 매개로 하여 수많은 시와 소설, 회화나 조각, 영화, 음
              악 등이 창작되어 왔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달빛은 지상의 우리에게 다양한 미적 정서와 시상(詩想)을 환기해 준다. 이를테면, 드
              뷔시의 ‘달빛’에서 주된 흐름은 달빛의 따뜻함과 밤의 외로움이 서로 대비를 이룬다. 드뷔시가 차용한 폴-마리 베를렌의 시에서 달빛은 고
              요함과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의 삼중구조를 이룬다. 어둠이 짙은 산등성이에 올라 바라보는, 커다란 나무 사이에 떠오르는 달은 우리에게
              온갖 상상력을 자극한다.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따스함과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밝은 것에
              대한 소망, 밝음의 대상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
              작가 김연식은 붓을 사용하지 않고 바람을 일으키는 여러 장치를 이용하여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조절한다. 화면 위에 바람이 지나간 물
              감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바람 소리는 대기의 숨소리와 대자연의 울림으로서 그 나름대로 하나의 교향악을 연출한다. 바람에 일
              렁이는 대지에 다양한 생물들이 자생하며 자라난다. 자라나는 미물들을 양육케 하는 자연 에너지로써의 바람은 달과 구름을 움직이는 대
              자연의 호흡이 된다. 바람의 흐름을 보면, 밀도가 높은 고기압에서 밀도가 낮은 저기압으로 평형을 이루기 위해 이동한다. 바람은 다양한
              풍화 작용을 거쳐 지형의 모습에도 여러 변화를 가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방위(方位)에 따른 네 바람이 아네모이(Anemoi)로, 로마
              신화에선 벤티(Venti)라 불리는 신으로 의인화되었다. 그리하여 계절에 따른 바람의 변화를 관측하고 인간사에 관여하였다. 인본주의나
              인간 존중의 가치를 담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표방한 단군신화에 풍백(風伯) 혹은 풍사(風師)는 바람의 신을 부르는 말로, 구름
              을 관장하는 신인 운사(雲師), 비를 주관하는 신인 우사(雨師) 와 함께 소개된다. 예부터 바람, 구름, 그리고 비는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
              는 중요한 요소였다. 바람은 지상의 흔적을 지우기도 하고 새로운 흔적을 남기기도 하며 지상의 생물이 이동하는 기나긴 여정에 함께 하
              기도 한다. 이는 에너지의 순환이요, 기(氣)의 순환으로 자연 과 생명의 순환으로 이어진다.
              구름은 인간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연 현상으로 우량의 과다나 강우의 시기 등은 곡식의 생장과 수확을 비롯한 온갖 동식물
              의 성장과 번식에 결정적으로 관련을 맺고 영향을 끼쳐 왔다. 하늘의 구름과 지상의 물길이 서로 기대어 화답하고 시공간의 변화를 가져
              오는 전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물길이든, 달이든 구름과 어울리는 배경에 따라 인간적 생활환경의 묘미가 달라진다. 바람과 동행하는 달과
              구름은 인간과 자연의 위상을 따뜻하거나 차갑게, 또는 가깝거나 멀게 새로이 설정해 주며 만물의 성장에 관여한다. 그리하여 형성된 생
              물학적 정체성은 더불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문학적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산 김연식의 작품세계에서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 다시금 자연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본다.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의 질서와 원리에의 순응을 깨닫게 된다. 필자의 생각엔
              이러한 깨 달음에 그의 예술 의지와 상상력이 크게 기여하고 있어 보인다.



                                                                                                     3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