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규리 초대전 2024. 1. 17 – 1. 30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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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쉼이란 주제로 삶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쉼이란 열정과 노력을 다하는 과정과 마무리에서 얻게 되는 달콤함일 것이다.
무릇 누구나 추구하는 쉼의 형태가
나에겐 일상이고 철창이며 좌절이었다. 그 안에서 손을 뻗어 나가려 해도 불시에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은 항상 되풀이 되는 매질이었고 타격감이었다. 그런 되풀이 속에 이제는 주변
에서도 그냥 가만히 있으라 요구했다.
하지만 내 안의 열정은 초단순으로 살아야 하는 내게는 또 다른 고통의 요소였다.
방구석에 은둔자로서 왜곡된 휴식으로 점철된 나의 삶에 어느 날 너희들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게 쏟아지는 편견처럼
나 역시 그런 눈으로 너희를 봤지. 무서웠다. 그래, 이제야
너희에게 고백하지만 나는 너희들 고양이가 무서웠어.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너희를 바라보는 내게 너희는 불쌍한 장애인 규리가 아닌 의지처로서 친구로서 집사
로서 무엇보다 믿음을 가지고
너희들을 내어 줄 존재로서 한결같은 시선으로 눈 맞춰주었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너희들에게 난 치유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너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나에겐 내 처지를 잠시나마 잊게 하거나 때론 신체의 불편함에서
오는 일상도 유머스럽게 그리고 통증에 힘이 들 때도 너희를 챙겨주는 의지를 다지게 해 주었다.
시나브로, 시나브로 나의 시간들이 다른 색깔을 갖추기 시작했다.
다른 이에겐 쉼 일 수 있는 모습이 나에겐 보이지 않는 철장이었지만 스스로의 껍질에 쌓여 내면으로 내면
으로 숨어들었던 나에게 대단한 각오나 결심 없이도 자연스레 세상을 향해 손을 뻗게 해 준 너희들은 내겐
엉겹결에 주어진 요술망방이 같아.
얼마 전, 의사 선생님께서 너무 신기하게도 너희들을 돌본 생활패턴이 저절로 재활이 되었다고 그러셨어
마감이 있는 작업에 스트레스가 치밀고 육체적인 한계를 느껴도 너희들이 또 보고 싶고 제발 잠 좀 자라는
엄마의 재촉에도 너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내겐 더 큰 활력이 돼.
다른 이에게 의지를 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믿음의 시선에
내가 마음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면 나의 사치일까...
나는 약하고 고집도 세고 자존심과 센척하는 가식을 가지고 있기도 해
그래야만 나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없이 순수한 너희들과 함께 가는 길에 스스로를 자유롭게 그리고 깊이 숨겨뒀던 삶의 열정을 내
어놓고 싶어.
그리고 너희들이 그러하듯이 삶의 상처에도 다시 꿋꿋하게 나아가고 싶어.
내가 평범한 집사요 캣맘에서 이제는 너희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어.
바닷가 길냥이 달래가 암에 걸렸다 했을 때 정말 화폭에 나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너희들과
내가 화폭에서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고 깨달아간다.
너희로 인해 이어지고 연결되는 나의 인연이 나를 어디로 또 어떤 신기한 삶의 경험을 하게 할지 은근 기대
도 돼.
척박한 너희들의 삶과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척박한 나의 삶이지만 그 척박함 안에서 우리가 같이 그림 여
정을 통해 유머와 따뜻함과 ㅋㅋ하는 웃음과 공감을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의 쉼에서 너희들의 쉼....
그리고 우리를 만나는 모든 이들의 작은 쉼을 향해 같이 가볼까?
- 서귀포 사계리에서 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