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임현주 개인전 2025. 1. 20 – 2. 7 갤러리모나리자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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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이젠 뭐든 기다릴 수가 있지 73x61cm
Mixed media on canvas
임현주는 자신이 청년기에 겪었던 어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정확히 드러낸다. 지나왔던 과정
에 있었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고통이 그림으로 승화했음을 보여준다. 그림에서 두 어머니를 동시에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억압과 자신이 가진 갈망을 드러낸다. 자신의 살아왔던 청
년기인 70, 80년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산복도로를 통해 부산이라는 지역성도 분명하게 표현한다. 산
복도로의 구조는 지금도 여전하다. 작가의 그림에 들어있는 계단과 골목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고,
어머니에 대한 갈망과 아픔이며, 부산에 사는 서민들이 살아낸 삶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가진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분리하고 오래 꿈꾸던 동화 같은 생각으로 부산에 살면
산복도로를 그리는 임현주의 그림에는 작가 자신과 자신이 겪었던 상황이 정확하게 들어있다. 작가에
게 계단과 골목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도구이자 자신의 몫인 계단을 오르겠다는 용기의 표현이다. 그
리고 그 길에는 자신의 집도 있다. 골목과 계단 그리고 집을 표현한 구불구불한 선은 모든 사람이 겪었
던 삶의 역경이기도 하겠지만 작가가 세상을 마주하고 찾아낸 자기다움이기도 하다.
그림 안에는 ‘엄마 거위’가 있다. 뻬로(C. Perrault)가 모은 전래 동화집인 《엄마 거위의 이야기》를 풀
어내는 주인공이다. 그림 안에서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빨간 모자》, 《푸른 수염》, 《장화 신은 고양
이》 같은 수많은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엄마 거위’는 작가 자신이다. ‘엄마 거위’의 등장은 자신
이 가진 모성애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가치’를 다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포스
트모더니즘에 대한 거부라 할 수 있다. 주변의 사물들이 분석되고 해체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중
받아야 할 존재로 그림 속에 나타난 것이다. 피어있는 꽃이 그렇고, 별이 그렇고, 골목이 그렇고, 우리
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각각의 대상이 모두 그렇다.
스타와 배우들이 롤모델이 되고, 정보만을 원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더 많은 지혜를 원했고, 영혼
이 중심이 되었던 전통을 이야기하는 기제가 거위다. SNS라는 혐오스럽고 가식적인 가면(페르소나)
으로 가리고 사는 시대에서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들뢰즈(G. Deleuze)가 말한 것처
럼 나쁜 영화가 되어버린 포스트모던의 사회에서 각각의 존재가 그대로 가치가 있다는 어머니의 지혜
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에서 석탄조각이 묻던 것처럼 꽃이, 별이, 골목이 다시 묻는다.
“왜 그렇게 힘들어?” ‘엄마 거위’는 동화를 들려준다. “힘들어도 삶은 충분히 살만한 거야.” 그림마다 다
른 이야기가 담긴 임현주의 동화가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 글 : 안국진(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