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윤경 초대전 2023. 6. 7 – 6. 17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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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경의 작품세계
의인화한 나무를 에워싸는 아름다운 서정성
글 : 신 항 섭 (미술평론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직립하는 나무는 늘 무언가를 갈구하듯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손을 내민다. 그렇다. 나
무는 인간보다 하늘에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열망의 몸짓을 한다. 수많은 나무가 저마다의 자리, 즉 산이나
강가나 들녘이나 마을 어귀 그리고 삭막한 도시 풍경을 거들며 존재한다. 인간이 유독 나무를 좋아하는 건
은연중 하늘에 더 가깝다는 사실에 이끌리기 때문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과 나무는 직립한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밀착되고 있지 싶다. 나무는 천년도 넘게 산다고 하니 하늘이 주
는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나무를 본보기 삼아 하늘을 우러르며 사는 건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무게를 덧붙이는 일일 수 있다.
윤 경의 나무 그림은 유독 하늘을 우러르는 구도가 많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서면 자연스럽게 하늘을 우러
르게 된다. 나보다 몇 배, 심지어는 수십 배가 되는 나무가 적지 않으니, 그 모양을 눈에 담으려면 필시 하늘
과 마주하게 된다. 일상적인 시선으로 마주하는 나무의 모양과 가까이서 올려다보는 나무의 모양은 크게
다르듯이 하늘도 그렇다. 멀리서 바라보는 나무는 줄기와 가지 그리고 무성한 잎으로 덮인 온전한 한 그루
를 보여주고 있으나, 가까이서 올려다보는 나무는 온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잎이 하늘을 가리는 모양새가
된다. 나무를 보려다가 하늘도 함께 보게 되는 셈이다.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리는 가운데 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은 한층 더 높게 보인다.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채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에 들어오는 하늘은 확실히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쪼가리 하
늘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나무를 통해 올려다보는 하늘은 방향성을 가진다. 머리 위, 그러니까 정중앙을
올려다본다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정중앙의 하늘을 본다는 건 나무를 통해서가 아니면 안 된다. 나무의 존
재 방식은 오로지 곧게 자라는 수직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의 모든 그림은 나무로 채워진다. 나무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자리한 곳에서 결코 벗어
나지 못하면서도 인간에게는 많은 걸 가르쳐주는 무언의 존재 방식에 감동해서일 터이다. 인간보다 월등히
큰 존재로서의 나무에 기댈 수 있다는 일 자체가 인간에게는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가 나무를 그림의
소재로 삼게 된 건 여기에서 있는지 모른다. 어디에서건 어느 때건 말없이 곁을 내주는 그 존재 방식은 철
학자적인 면모까지 갖추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나무, 나무, 나무뿐인 그의 그림은 이전까지 보아온 일반적인 나무 그림, 즉 재현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
다. 무엇보다도 나무 색깔이 일반적인 초록이 아니다. 나무도 계절에 따라 다른 색깔로 치장한다지만, 그의
나무는 계절색과도 별다른 관계가 없어 보인다.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가을 색인 갈색처럼 계절색에 맞추
기 어렵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딱히 가을의 상징색 가운데 하나인 갈색을 일부러 맞추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