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윤경 초대전 2023. 6. 7 – 6. 17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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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다양한 색채이미지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그의
           작업은 한층 부드럽고 온화하며 명상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무 조각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대신
           에 고운 입자의 종이죽의 활용이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나무라는 질료로서의 직접적인 제시라는 방법에서 벗어나 물감만으로 질감 효과를 나
           타내는, 전통적인 묘사방식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나무나 종이죽 그리고 숯을 사용하던
           작업에서 강조되었던 질감 효과를 이어가고자 한다. 이러한 근거는 물감을 수십 차례 흩뿌리는 방식으로
           두꺼운 질감, 즉 물감의 층이 형성되도록 작업하는 데 있다. 이는 또 다른 방식의 현대미학에 관한 수용이
           다. 이로써 종이죽을 사용해온 이전의 작업에 근사한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한마디로 종이죽을 사용
           하던 이전의 작업과 시각적인 이미지의 공통성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회화적인 이미지를 중시하게 된 최근 작업은 풍경화 구도, 즉 나무들이 수평적으로 줄 지어서는 구도가 등
           장한다. 이전에는 주로 나무 한두 그루 많아야 너더댓 그루에 그치는 구성이었다면, 최근에는 숲을 이루는
           형태가 된다. 같은 나무들이 줄을 잇거나 밀집하여 숲을 이루는 구도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특정의 색채만
           을 사용하여 현실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관념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하늘색도 현실적인 색채감각과는 무관한 초록색, 붉은색과 같은 이질적인 색채이미지로 꾸민
           다. 그런 가운데 별들로 빼곡히 채워지는 밤하늘 풍경도 즐기는 작업의 하나이다. 바닥에 누워 나무를 올려
           다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히 드러나는 하늘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나무와 함께 보이는 하늘은 제
           한적임에도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하늘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나무와 함께 본다는 건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본다는 의미가 있다. 더구나 생명체로서의 나무 사이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관념적인 하늘이 아니라
           실제적인 하늘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나무는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물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일상적인 삶의 희로애락을 넌지시
           지켜보는 수호자일 수 있는가 하면, 힘들 때 가까이서 속삭이며 토닥여주는 큰 위안의 대상일 수 있다. 어
           쩌면 그의 그림에서 보는 나무는 인간을 닮아 있는 듯 싶은 것도 이에 연유한다. 즉, 의인화하고 있다는 뜻
           이다. 단지 위안의 대상이라기보다 말을 걸고 마음을 열게 하는 존재로서의 나무, 즉 동반자 관계임을 천명
           하려는 것일 수 있다. 그러기에 많은 걸 생략한 채 단지 나무가 지닌 존재성과 거기에 깃들이는 아름다운
           서정성만을 남겨 놓는다. 이미지의 간결성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 말하고 싶은 많은 걸 함축하려는 의지에
           서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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