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현우식전 2024. 2. 11 – 2. 15 제주특별자치도 문에회관 1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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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 문 >
양 상 철 (융합서예술가)
서예는 선(線)의 예술이다. 기계적 선이 아니라 서자의 성정이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표출되는 필선(筆線)의 예술
이다. 서예가가 ‘글씨를 잘 써야 한다’는 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글씨를 잘 잘 썼다고 해서 칭찬받는 시
대가 아니다. 쓰는 것 이상의 초월한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필선을 통해 드러나는 개성과 시대심미 같
은 것들이다. 이러한 것에 예술성이 더해지면서 창신의 길은 비로소 열린다.
남은의 첫 전시를 축하하기에 앞서 에둘러 창신에 대한 시대적 사명을 언급한 것은, 배움에 대한 남은의 진솔성과 예
술세계가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확신시켜 주기 때문이다.
남은의 작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품평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기능은 시간이 해결해 주고 창신은 작가의 생각이 결
정 지어주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첫걸음은 중요한 것이다.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난관에 봉착하여 포기하는 사람
도 있다. 그러나 준비된 자에게는 그러한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있다. 새로운 세계로 진입을 모색하는 남은에게 앞 선
자로서 몇 가지 생각들을 함께 나눠 힘을 보태고자 한다.
우리 시대는 다양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다원화시대이다. 세상이 급변해지니 사람 사는 방식도 변하고, 예술의 심미도
변해졌다. 변화의 시대에 그냥 머물러 안주하고 있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과도 같다. 전통적 학습방법에 길들여져,
알고 있는 것만이 중요하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면 맹목적으로 고전에 추종되어 시대의 새로움을 찾는데 어려움을
준다. 아무리 임서(臨書)가 중요하더라도 임서로 체득된 서체만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각언어를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옛사람을 흉내 내어서는 옛사람을 뛰어 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3천5백 년을 뛰어넘는 오랜
서예역사 속에서 글씨 잘 쓴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 중에 시대를 반영한 자신의 글씨를 쓴 자만이 세상에 이
름을 남겼다.
예술은 숨 쉬고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환경과 조건이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보다 흥한
서예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작자 개개인이 독창적 작품세계를 새롭게 펼치면서 진화되는 서예의 흐름에 동참해
야 한다. 새로움이란 우리를 에워싼 환경에 적응하며 전통 속에서 자아를 발견했을 때 탄생하는 독창적 심미세계다.
이런 시대성은 누구에게나 준비되고 발견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예술의 치열함을 믿고 시대를 사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보석인 것이다.
남은의 도전과 탐험에 장도의 발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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