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서미자 초대전 2023. 1. 11 – 1. 31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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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자의 자연그림, 인간과 무한한 우주에너지의 가교
글 _ 김윤섭 (미술평론가)
예로부터 인간이 자연에 가장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중 ‘농사(農事)’가 있다. 인간에게 ‘농사’는 어떤 의미
가 있을까? 한자어를 풀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농사의 ‘農’자는 ‘曲(노래 곡)’과 ‘辰(별 신)’이 합쳐진 글
자이다. 풀어보면 ‘별의 노래’ 정도겠다. 식물이 자라나는 농사(農事)와 ‘별의 노래’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하늘과 관련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식물은 위와 아래로 동시에 자란다. 뿌리는 땅 밑으로, 줄기와 잎은 하
늘로 향해 커간다. 그렇게 보면 ‘별의 노래’는 하늘(우주)과 관련이 있겠다. 결국 식물의 성장은 ‘우주의 에너지[農]
를 얼마나 잘 운용[事]하는가’에 달린 셈이다.
서미자 작가의 그림은 일반 풍경화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저 매력적인 풍광을 옮겨놓은 풍경화가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 자연으로부터의 교감, 자연 너머의 우주관이 한꺼번에 담겨 있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농사(農事)’에 대한 개념을 빗대어 보면 이해가 좀 더 쉬워진다. 농사과정에서 인간
의 제 역할은 ‘하늘과 땅의 교감을 중개하는 것’이다. 서미자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인간과 자연의 교
감’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생명력에 대한 예찬’이다.
“봄날의 활짝 핀 꽃이 참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꽃잎은 이내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그 흩날리는 꽃송이에는 생명
의 정점에서 발하는 아름다움과 함께, 그 명을 다한 소멸의 장엄함이 동시에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림 속에 행
복한 아름다움과 생명력 넘치는 꽃의 향기를 담으려 애씁니다. 그것은 자연의 풍성함과 더불어 다양한 자연의 모
습(우주의 신비로움이나 시각적 즐거움)으로 표현한 행복입니다. 그 안엔 장자의 무위자연과 물아일체를 통해 지
친 현대인들에게 깊은 위안과 안식을 전하고 싶은 ‘힐링의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서미자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생명성’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숲이나 꽃
밭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계절로 보면 가장 큰 생명력이 돋보이는 ‘완연한 봄과 한여름의 중간’ 정도 된다. 그녀가
그린 이 시기의 숲은 수십 종의 식물들과 야생 꽃들로 가득하다. 정확한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다양한 식물
군이 연출해낸 ‘생명력의 하모니’에 주목할 따름이다. 일정한 거리와 시점에서 제각각의 식물들을 한꺼번에 조망
해낸 대목에서 서미자 작가의 노련미가 돋보인다. 특히 클로즈업 된 풀숲의 세밀하고 풍부한 공간감과 화면의 상
하좌우를 평면성으로 처리한 ‘탁월한 대비감’이 주목된다.
서미자 작가가 작품의 기저에 품고 있다는 ‘장자의 무위자연과 물아일체’는 동양의 우주관과도 통한다. 이는 ‘인
간ㆍ자연ㆍ우주’를 하나의 몸으로 보는 것과 같다. 역시 농사법과 비교하면 더 낫다. 매년 천체의 운행 주기에 맞
춰 농사짓는 법을 연구한 서양의 ‘천체농법(Bio-Dynamic)’이나 동양의 ‘육십갑자 농법’도 여기에 속한다. 가령 ‘논
둑에 버드나무가 있으면 벼농사가 잘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벼와 버드나무가 태양계 중 목성(木星)의 영향을 받
는 같은 화본과 식물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목성의 기운을 더 북돋아 주는 역할을 고려해 함께 붙여놓은 셈이
다. 서미자 작가 역시 우주의 기운을 품은 자연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꽃길이나, 풀숲ㆍ나무숲을 걸으면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림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노
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마침 나비가 날아다니거나, 숲속의 새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
를 듣게 되면 생명의 충만함과 마음의 휴식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어느 날 자연에서 홀로 무수한 자연을 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