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서미자 초대전 2023. 1. 11 – 1. 31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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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symphony
45x45cm Acrylic on canvas
보면, 마치 무릉도원에 와 있다는 느낌과 아울러 그 자연에서 잊혔던 사람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자연이 들려주는
가슴 깊은 이야기들, 더없이 순수하고 선하게 자연을 닮은 사람 사이에서도 꽃의 향기가 풍겨납니다. 작품을 보면
그런 향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흔히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한다. 단순히 정성을 다해야 곡식이 잘 자란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
다. 실제로 조용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이 더 잘 자라고, 더 튼실한 과실을 맺는다는 것은 실험으로
도 증명된 사실이다. 바로 ‘진심어린 교감’의 결과이다. 서미자의 그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전체를 가득 메
운 풀숲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크고 작은 이파리와 각양각색의 꽃송이들은 제각각 색다른 음률
이 흘러나오는 스피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에선 오래 쳐다볼수록 더욱 감미로우며, 모든 체증까지
녹여 내주는 흡입력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서미자의 작품은 얼핏 단순해보이지만, 제작과정은 더없이 세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캔버스 표면에
아크릴 물감으로 최소 다섯 번 이상의 덧칠해 평면으로 만든다. 그 위에 오밀조밀 세세하게 스케치 한 후 세필(細
筆)과 펜으로 그려 나간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풀숲의 대상은 특별한 의미보다는 무명의 식물들이다. 가령 베
란다 구석―비밀의 정원―에 버려진 화분 위로 어디선가 날아온 들꽃과 풀씨가 자라난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간혹 그 무명의 주인공들을 돋보기로 들여다본 서 작가는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목격하게 된다.
“자연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텍스트입니다.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끝
이 없습니다. 나에게 그 욕구란 자연의 소소한 일상을 소설처럼, 때로는 시처럼, 또 다른 관점을 가지고 표현해가
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우연히 만난 화초들이 몸짓으로 말을 건넬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공간이지
만, 그래도 반가운 방문객은 있습니다. 벌, 나비, 잠자리, 새…. 물론 나도 거기에 일부가 됩니다. 그런 모습에서 ‘인
간은 관계의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 그것은 ‘조화로운 세계를 꿈꾸는 것’과 같
습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서 행복의 즐거움을 찾게 됩니다.”
서미자 작가가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면적인 메시지는 그림 속 깊숙이 숨겨져 있다. 얼핏 보면 화면 가득
한 풀숲 혹은 바다 속의 정경만 보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이파리 사이사이에 뭔가 묘한 기호들이 빼
곡하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주적 요소’를 상징하는 기하학적인 이미지들이다. 서 작가에
겐 무한한 우주에너지와 교감할 수 있는 언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격이다. 인간이나 식물 등 모든 생명체의 기본
구성요소인 원자(原子)와도 닮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서미자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칠 수 있는 풀숲에서조차 모든 생명의 근원인 우
주와 상통할 수 있는 자취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가장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인간적인 관
점을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서미자가 그려낸 자연그림은 ‘인간과 무한한 우주에너지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서 작가의 자연풍경은 우리 내면 깊숙이 잠든 이상향의 심경(心境)
을 대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