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지정연 개인전 2023. 2. 8 - 2. 14 토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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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위한 수행(Performance for Nostal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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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연의 작품은 가까이에서 보면 답답해서 숨이 막힌다. 한지 하나하나를 작은 탄알이나 끈처럼 뭉쳐서 그 뭉친 작은 덩어리 하나하나를
          캔버스에 촘촘하게 붙인다. 그 하나하나가 보이고 그것들이 배열되어 드러나는 부분이 전체로 눈에 들어오면 그 맹목적 노동 때문에 숨이
          좀처럼 쉬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가혹한 노동의 산물은 색이나 전체 구성적 형식에 의해 적당히 은폐되고, 또 다른 작품으로 우리의 시선
          이 이동하면서 그 작은 부분들이 엮어내는 스펙터클을 맞이한다. 그때 숨이 막히는 답답함은 해소되어 비로소 크게 숨을 쉴 수가 있다.

          지정연은 작업을 종이에서 시작하고 종이에서 끝낸다. 뭔가를 종이 위에 그린다기보다는 뭔가를 종이를 사용해서 형상이나 형태를 만든
          다. 그렇게 사용되는 종이는 우리가 알던 그 종이가 아니라 뭔가 다른,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되는 종이다. 그 종이를 가공
          하고, 변형하며, 재구성하여 그녀는 작업을 한다. 우리는 종이를 “식물성 섬유를 원료로 하여 만든 얇은 물건, 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
          리거나 인쇄를 하는 데 쓴다.” 우리는 종이를 종이 자체로 경험하고 이해한 게 아니라, 종이를 그 용도와 기능으로서만 받아들이고 사용하
          고 있다는 의미다. 종이가 문풍지로도 쓰이기도 하고, 옷감이나 컨테이너 용기로도 쓰이며, 건축 자재로도 쓰인다는 것을 듣기도 하고, 보
          기도 하면서도 그런 정보를 예외로 간주하고 쉽게 잊어버린다. 그냥 종이란 쓰고 그리며 복사하고 출력하는 그런 것, 즉 이미지나 문자를
          담는 매체정도로 알고 있다.

          지정연은 줄곧 종이로 작업을 하면서 종이의 이 일상적 기능성을 해체/탈구축하고 그냥 물질 재료로, 오브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그녀에게 종이는 기록의 매체가 아니라 어릴 때 시골서 경험하던 문의 문풍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지가 가지고 있는 빛의 투과성
          자체가 어린 시절 경험과 기억을 담으면서 그녀의 종이는 기록보다는 빛과 색을 표현하는 오브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는 종이를 특
          정한 사이즈와 형상으로 빚기도 하고, 말기도 하며, 불에 거슬리기도 하고, 색을 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일단 종이를 작품의 소재나 오
          브제로 사용하는 이상은 종이라는 물성에 스며든 기록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평면의 형태로나 입체의 형태로든 남겨지는 문자나 이미지의
          형태는 피할 수 없다. 마치 기록의 대상이 되는 이미지나 텍스트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어떤 추상적 구조는 종이가 소재가 된 작품에서 불가
          피하게 드러난다. 마치 롤랑 바르트나 자크 데리다가 주장하는 에크리튀르(e’criture)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과 흡사하다. 구어와 문어 대
          신에 입말과 글말로 대체하여, 입말이 글말보다도 먼저라고 하는 기존 언어학의 상식을 뒤집으면서, 입말을 글말의 역사적 인식적 반영이
          라고 주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언어 자체를 이미지로 형상화시켜서 기록되는 기호 자체가 제도화의 흔적인 것이
          고, 이 흔적은 하나의 지시 구조, 즉 완결된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재현된 무의미한 기호들 간의 시각적 차이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종이라는 매체는 언제나 물질적으로 분명하다. 그러나 그 매체성, 또는 물성이라는 것은 비가시적인 추상이다. 한지든 그 원료가 되는 닥나
          무든 그 자체가 스스로의 물질적 본성을 드러낼 수는 없다. 결국은 그 물질을 대상으로 보거나 경험하는 사람들이 감정을 이입한 의인화의
          결과이니까, 물성이니 매체성이니 하는 것은 그 물질에 대한 태도나 관념에 다름 아니다. 지정연은 매체로서의 종이를 해체하여 물질로서
          의 종이로 재구성하면서 의미 없는 기호나 물질적 흔적들이 서로 비켜나고 미끌어지게 하면서 드러나는 공간, 또는 펼쳐지는 메트릭스를
          하나의 세계로서 작품을 보여준다. 비선형적이고 우연적이며 임의적인 의미의 세계를 예술가는 울퉁불퉁하고 촘촘하게 만들어낸다. 그 세
          계 속에서 지정연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삶의 경험을 그리움으로 채우기 위해 시치프스적인 불굴의 노동을 예술의 이름으로 수행하고 있
          다. 그리워하기 위한 그리움이 그녀의 작품 속에 노동의 이름으로 꽉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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