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최정연 개인전 2025. 11. 5 – 11. 17 가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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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영혼의 울림 :  SoulMonster









             이론으로만 배우던 ‘기운생동’을 박물관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의 전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사진 같다’는 감
             탄이 아니라, 그림이 살아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서양화를 멈추고 한국화를 배우기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
             갔다. 먹도 다룰 줄 모르던 20대 초반의 나는 선대의 그림을 미친 듯이 모사하며, 그 숨결을 좇았다.


             그러나 20대 중반이 되자 모사를 멈추고 싶었다.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머릿속에 공존하던 동양화와 서양화의
             두 세계를 한 화면 안에 융합하고자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재료와 철학, 표현 방식을 아우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대학원을 마친 뒤에도 매일 작업실에 머물렀지만, 몇 년간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긴 슬럼프가
             시작되었다.

             석사학위를 받은 지 오래였지만 개인전을 열지 못했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작품
             을 몇 달씩 반복해서 그리다 결국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고 싶었다. 그림
             이 전부였던 인생에서 그림을 증오하게 된 그때는 나에게 깊은 절망의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정연아, 너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답은 오래된 스프링 연습장 안에 있었다. 그 안에는 오덕 시절, 가슴 설레며 그렸던 수
             많은 그림들이 남아 있었다. 지금 다시 보아도 그때의 열정과 기쁨이 생생히 느껴졌다. 그 그림들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고, 실제를 모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분명히 ‘영혼’이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바로 창작자의 손을 떠난 작품이 스스로 살아 움
             직이게 하는 일, 그 안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나는 다시 그 영혼을 되찾기로 했다. 한없이 사랑스럽다가도 나를
             절망에 빠뜨리는 괴물 같은 그림이지만, 그 안에 다시금 빛나는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작품에 ‘Soul Monster’라 새겨 넣는다. 그것은 내 안에 공존하는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아름다움
             과 두려움의 총체이자, 창작의 고통 속에서도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는 영혼의 형상이다. 그것은 나를 괴롭히면서도 다
             시 살아있게 하는, 내 안의 영혼이자 괴물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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