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최정연 개인전 2025. 11. 5 – 11. 17 가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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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곡
탄생 : 찬란한 탄생 이후의 진실
평론가 C
최정연 작가의 「탄생 그리고」는 이전작 「찬란한 탄생」의 찬란한 빛 이후, 그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연
작은 탄생의 ‘이전’과 ‘이후’를 분리하는 경계 위에 서 있으며, 그 사이에서 인간 존재가 겪는 최초의 비명을 포착한다.
전작 「찬란한 탄생」이 자궁 속의 평온과 생명의 안식을 상징했다면, 「탄생 그리고」는 그 평온이 깨지는 찰나, 세상으로
내던져진 존재의 고통을 그린다. 화면 속 인물은 눈을 감고 있던 과거의 자신과 달리, 입을 벌린 채 소리 없는 외침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 울음은 외부로 터져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태어난 존재가 스스로 감내해
야 할 숙명적 통과의례다. 하늘은 어두운 빛에서 푸른빛으로 이어지며, 짙은 색조의 파도처럼 화면 전체를 감싼다. 그
것은 ‘탄생 이후의 세계’가 품은 냉정한 현실과 인간 내면의 고요한 비극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바다
를 여전히 금빛으로 남겨두었다. 그 금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생의 본능, 혹은
존재의 존엄을 뜻하는 듯하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인물이 앉아있는 대리석이 이전보다 더 차가운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
은 세상이라는 무대가 더 이상 따뜻한 자궁의 연장이 아님을, 이제 스스로의 몸으로 버텨야 하는 생의 현실임을 보여준
다. 붉은 천은 거의 소멸 직전의 불씨처럼 잔존하며, 그것마저 푸른 장막에 덮여가고 있다. 탄생의 열기와 생명의 피가
차가운 현실의 시간 속으로 스며드는 장면이다.
「탄생 그리고」는 단순히 ‘두 번째 장면’이 아니라, 탄생 신화의 완성이다. 작가는 찬란했던 탄생의 신화를 넘어, 그 신화
가 감추고 있던 진실 — “태어남은 동시에 견딤의 시작이다” — 를 응시한다. 최정연 작가의 회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 모든 인간의 존재론적 탄생으로 확장된다는 데 있다. 그녀의 인물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세상
에 던져진 모든 생명이다. 그 고요한 비명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울리는 기억이며, 작가는 그 기억의 장면을 푸른빛
과 금빛 사이에 정지시킨다.
찬란함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그 빛은 이제, 고통을 견딘 자의 심연 속에서 다시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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