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권숙자 개인전 2025. 10. 1 – 11. 15 권숙자안젤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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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시성이 은은하게 흐르는 독특한 회화의 세계
미술평론가 · 한국미술비평연구소 소장 장 준 석
화가 권숙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조형적으로 다루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잘 보이
려고 포장하지도, 예술가로서의 명예나 성취를 위해 애쓰지도, 세태의 흐름에 편승하지도 않았다. 순수한 조형성으로써 자신
의 내면세계를 오롯이 표현해내면서 소박한 예술 세계를 묵묵하게 추구해 왔다. 그는 또한 교육자로서 대학 강단에서 미술교
육을 통하여 인재를 양성해왔다. 화가이자 교육자로서 40여 년 외길을 걷고 있는 권숙자의 삶은 자유와 열정의 예술가로서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권숙자는 그의 숙원대로 용인 지역의 문화발전과 지역민들을 위하여 2015년에 사비로 미술관을 건립하였다. 자신의 예술가적
인 혼과 땀을 섞어 수년에 걸쳐 건축하게 된 안제리미술관은 마치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듯이 자신의 내면에서 표출된 회화성과
더불어 문학성이 농후한 독특한 조형성을 지닌 미술관이다. 마치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러했듯이 미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자신의 작품들과 동일한 분위기를 지닌 아름다운 미술관을 탄생시킨 것이다.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권숙자의 예술적인 조형성은 미술을 전공한 이후 부단하게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어려서부터 예술
적 재능을 인정받은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자연, 사람, 동물 등의 대상을 진지하게 사색하고 묘사하였다. 소통과 교감이 가능
한, 문학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당시의 그림들은 대단히 밀도가 있으면서도 독특한 회화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이
처럼 남다른 예술가적인 기질을 지닌 작가의 서정성을 지닌 표현력은 어떤 미술사적인 아류에도 편승하지 않는 독창적인 회화
로 귀결되었다. 이후 40여 년 동안 작가의 작품에는 삶과 자연에서 비롯된 여러 소재들을 담아내는 순수한 서정시 같은 독특한
조형미가 변함없이 잔잔하게 흐르게 되었다. 서정성과 시성을 내포한 화가의 순수미적 상상력은 목이 긴 새나 사슴, 물고기, 해
와 별, 산과 들의 모습 등 다양한 자연의 생명체와 하나가 되기도 하고, 사람, 특히 여인을 통해 사랑과 절망, 애환, 희로애락 등
이 함축된 내면의 일루전(Illusion)을 표출시키는 형태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그가 모교에서 조교를 하던 시절의 첫 전시회 때 스승 김창락 교수는 그의 작품에 문학성이 돋보임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매우
예리하면서도 정확한 평가였다고 생각된다. 이후 1990년대에 전개되었던 자연을 테마로 한 조형성은 끊임없는 사색과 자신의
삶의 바탕에서 비롯된 문학적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더 나아가 마치 종교에 귀의한 것처럼 진지하게 내면과 자연의 본 모습
을 성찰하면서 이루어지는, 산과 물고기, 해, 달 등이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작가의 커다란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작품 <이
세상의 산책-자연과 부부>는 왕성하게 자란 들풀 속을 헤집고 달리는 목이 기다란 사슴을 탄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을 심플하게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하는데, 보는 사람의 심경에 따라 상상하는 게
다를 것이다. 사슴을 붙잡고 날아가듯 붙어있는 한 쌍의 남녀를 보며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상상할 수도 있고, 연인과의 일
탈을 꿈꿀 수도 있다. 작품에 나타나는 신비스럽기까지 한 형태와 구도 그리고 타고난 문학성과 회화성은 여느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표현의 자유와 여유 그리고 순수성을 느끼게 하는데, 이는 곧 자연의 안식처와 같은 넉넉함, 편안함,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의 감각과 정서가 깃든 조형미라 여겨진다. 이런 성향들을 자신의 내면에 담아 하나의 그림으로 함축할 수 있었던 작
가의 조형적인 역량은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감성적이고 시적임이 분명하다.
자연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우리 시대의 사람의 모습을, 2000년 이후 엄청난 변화 위에 서있는 갈등과 슬픔, 절망과
갈망 그리고 구원으로 점철된 것으로 규정하면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회화적으로 표현해 온 작가는 이런 성향들을 표
현하는 것이 참다운 창조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여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감흥을 회화적으
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곧 진실을 좇는 진정한 창조로서 자연물이나 심상에서 비롯된 생명력을 동일한 선상에
서 상상력으로 펼쳐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생명의 카테고리를 넘나들며 형성된 상상력을 문학적이면서도 감각적
인 조형으로 표출하고자 함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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