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김용득 초대전 2025. 9. 3- 9. 30 콩세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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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혹은 풍경이 아닌
김용득의 그림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품’이다. ‘품’은 모습이다. ‘품’은 향수(鄕愁)이다.
‘품’은 사랑이다. 작가 김용득의 그림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렇게 단순하다. 이 소박한 단순함이 그런데 만만치가
않다.
첫 번째, 모습으로서의 ‘품’은 통영바다의 현장성과 사실성의 확보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통영의 작은 섬에서
태어난 작가는 바다와 그 주변의 이미지들, 이를테면 갈매기의 움직임이나 파도의 물이랑, 차고 이지러지는 해와
달, 밤바다 위의 별 밭, 배의 생김새나 어구들, 섬의 주된 수종(樹種)인 동백과 소나무, 언덕 위의 흑염소, 텃새들의
둥지........ 등등 일련의 소재들을 모두 삶으로 통과해 왔다. 그로 인해 확보된 것이 데생의 정확함인데 그의 데생에
는 조금도 얼버무린 흔적이 없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은 낡지 않는 것처럼 김용득의 통영
바다의 품새는 거짓이 아니다.
두 번째, 향수(鄕愁)로서의 ‘품’은 바다에 대한 작가의 내면화이다. 김용득의 통영바다는 주관적으로 재구성된 바
다이다. 현재의 바다이기보다는 과거나 미래의 바다, 혹은 현실의 바다이기보다는 이상향의 바다에 가깝다. 그 이
상향은 고향의 이미지에 근사치를 두며 고향의 다른 이름인 추억을 환기한다. 그것은 현대인의 ‘고향상실’이라는
내상(內傷)을 건드린다. 그러한 자극은 쓰라린 것일 뿐더러 나에게도 고향이 있었음을 각인해주는 동시에 상처 입
고 이지러진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의 힘, 휴식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세 번째, 사랑으로서의 ‘품’은 작품을 통해 만나는 작가의 정신이다. 김용득은 모든 작품에서 희망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새나 꽃이나 별들이나 해와 달, 심지어 한 땀 한 땀 물결의 편린들이 말하고 있는 것도 모두가 희망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상들의 희망하기는 결국 인간을 향한 전언이다. 끝없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안간힘
은 사랑에 대한 가없는 믿음, 즉 인간애(휴머니즘 정신)인데 그 인간애의 구체적 대안으로 작가는 ‘가족(부부, 가
정)애’를 제시한다. 이 소박한 믿음을 작가는 극진한 섬김으로 화폭에 새겨 넣고자 하였다.
그런 극진함은 손쉬운 터치를 사양하고 독특한 표현기법을 작가 스스로에게 주문하고 있다. 수 십 번 덧칠한 표
면에 물결의 이랑을 한 땀씩 긁어내고 빛이 반사되는 물길 자리를 가늠하여 자개를 붙인 후 다시 덧칠한 표면에서
빛의 자리를 긁어내는 기법으로 반짝이는 바다의 표면을 연출해 내고 있다. 기법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점묘파
의 삼원색 점들이 어우러지면서 화폭에 삼원색 그 이상의 색채를 스스로 이루어 내듯 긁어낸 표면에 드러난 한 땀
한 땀의 물결의 편린들은 스스로 어우러져 반짝이는 자개 빛과 함께 그야말로 수 십 가지 바다의 색채를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인간을 향한 한없는 긍정과 삶을 껴안는 따스함. 결국, 김용득의 통영바다 ‘품’은 바다의 품이자 작가 자신의 ‘품’
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 그것이 화가 김용득의 그림이 ‘풍경’이면서 ‘풍경이 아닌’ 이유인 동시에 그의 작가 정신에
대한 신뢰의 근간이다.
- 조 예 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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