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김민배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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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선생과 나










              海印 김병주선생은 인사동 <海印갤러리> 대표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                       며, 그렇게 그와 나는 부지불식간에 문화와 고미술을 매개로 한 친구가

              지 다 겪은 高手들의 세계인 古美術갤러리 세계에서 40년 가까이 잔뼈                       되어갔다. 나는 나이 60 언저리가 되었을 때 秋史공부에 入門해 대학에
              가 굵었으니 알만하다.                                                 서 특강에 나설정도로 한때 미쳤고, 海印선생도 나와 만날 당시 秋史공
                                                                           부에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래서 海印선생과의 만남은 늘
              인사동 골목 구석구석의 맛집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 요즘 어느 음식점                       즐거움의 연속이었고, 그는 나를 고미술과 이를 중개하는 갤러리의 세

              이 핫한지 그의 머릿속에 다 스캔이 되어 있다. 또한 어느 갤러리 사장                      계로 인도했다.
              님의 수중에 名品이 들어왔는지, 콜렉터 누군가가 촉을 세우고 관심을
              갖는지도 그의 정보망에 다 걸려들게 되어 있다.                                   그와 만난 기간은 2년 정도로 길지 않았지만 서로는 친형제처럼 상대를
                                                                           잘 알게 됐고, 그를 통해 들여다본 인사동 고미술 갤러리의 세계는 흥미

              국보급 불상이든, 달항아리들, 겸재 정선의 서첩이든, 인사동에 입하하                       진진했다. 그 珍貴한 물건들이 어디에 숨어 있다 나오는지 ◆일본루트
              면 정보가 돌게 되어 있고, 그때부터 <입질>이 시작된다, 갤러리 대표들                     ◆미국루트 ◆중국루트 ◆컬렉터가 고인이 된 이후 자녀들이 은밀하게
              은 국보급 명품의 최종 소유자가 아니라 어차피 마지막 낙찰자, 主人을                       내놓는 루트 ◆동대문 청계천 풍물시장 루트 ◆전국의 나까마 루트등
              찾아주는 중개인 역할을 하는 宿命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다완과 매                       다양한 루트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화>를 동양화, 서양화 기법을 아울러 캔버스에 풀어내 자신만의 작품세
              계를 구추해 가고 있는 如村 이상태 화백은 고향 珍島후배이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고려시대 石塔을 흥정하는 현장도 海印선생 덕분에
                                                                           적나라하게 참관할 수 있었다. 참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프로의 세계였다.
              대학 졸업 후 진도와 光州에서 미술교사를 하다 뜻한 바 있어 서울에 정

              착해 외롭고, 힘든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如村은 TV조선 대표를                       海印선생은 또 동대문, 청계천 풍물시장의 古美術상인들로부터 <명품
              맡고 있는 내 방에 불쑥불쑥 들러 차 한자 나누다 가곤 했다. 如村은 내                     을 사냥해 내는 현장>도 나에게 가감 없이 보여 주었다. 주말 순례치고
              방에 있는 秋史의 <歲寒圖>와 <不二仙蘭圖> 서각과 영인본 액자 등을                       는 고급 취미였다. 나는 많지는 않았지만 여윳돈이 생기면 그에게 맡겼
              들여다보더니 내가 秋史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如                      고, 海印선생은 내가 좋아할 법한 물건으로 인도해 줬다.

              村과 秋史를 주제로 茶談을 나누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들이 새
              롭다.                                                          白凡 金九선생의 <蕙史>를 비롯, 김흥수 화백이 1979년 朴正熙대통령
                                                                           이 서거하던 해 이후락씨에게 선물한 <얼굴>, 秋史体 현판 서각, 병풍
              그런 如村이 인사동 <海印갤러리>에 秋史현판이나 관심 가질 만한 물                        등도 다 그렇게 나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와 난 가격대를 물어본 적도

              건이 들어오면 귀띔해 주면서 인사동 방문을 권유하곤 했다. 海印선생                        없고, 구체적인 <돈>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모든 게 以心傳心이었
              과의 운명적 만남은 그렇게 이어졌다.                                         다. 난 그냥 海印선생이 돈을 따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名品을 나에게
                                                                           인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海印선생은 그러나 이를 한 번도 입밖에
              물론 <海印갤러리> 첫 방문 때, 秋史를 주제로 몇 시간 대화를 나눴으                      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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