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공병_빛이스며든 나의 이야기 2025. 7. 16 – 7. 28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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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는 모양이라든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싶은 모양, 화면을 가득 채우는 직선의 자유로운 구성, 무수한 점의 집합에 의한 원형, 작은
                    얼음알갱이 같은 나선형의 은하 형상, 그리고 채색을 가미한 회화적인 표현과 같은 다양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처럼 다
                    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건 현대미술의 특징인 조형적인 변주에 합당하다.
                    이렇듯이 다양한 기법을 응용하는 그의 작업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의 제안이다. 밀도 높은 이미지의 집합 및 집적은 형태
                    만들기에 천착하는 전통적인 조형 방식과는 엄연히 다르다. 작업 방법 자체는 조각적이지만, 그림으로 혼동할 만하다. 아크릴판 뒷면
                    이 음각 형태로 파이고 깎인 상태임에도 앞면에서는 돋을새김과 같은 이미지로 읽힌다. 이처럼 시각적인 이중성을 가지게 되는 건 아
                    크릴판의 투명성에 기인한다. 유리와 동일한 투명성은 빛을 투과함으로써 깎이고 패인 뒷면의 상태를 그대로 인지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빛이 개입함으로써 생기는데, 음각의 이미지가 양각의 이미지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각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1.5-3.0mm의 투명한 아크릴판에 조각도와 다양한 전통 장비를 이용해 깎아내고 파내는 방식으로 만들
                    어진다. 즉, 깎아내고 파내는 음각에 나타나는 패턴을 보는 게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자 결과물이다. 거기에는 예리한 조각
                    도와 전동 장비로 깎아낸 무수한 자국이 집적하면서 특정의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 작품에 따라서는 동일한 깊이와 폭을 가진, 깎이거
                    나 패인 자국이 집합을 이루면서 거대한 느낌의 이미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캔버스와 같은 평면적인 재료로서의 아크릴판은 부조의 역순을 따른다. 다시 말해 붙여나가는 방식과 달리 깎아내고 파내는 작업이
                    다. 따라서 부조가 플러스 작업이라면 아크릴판 작업은 마이너스 작업이다. 하지만 작업의 묘미는 파내거나 깎아낸 그 사실을 주목하
                    는 게 아니라 그 결과인 뒷면에 형성된 이미지를 보는 데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이너스의 작업이 플러스의 이미지로 보인다.
                    다시 말해 작업하는 그 이면에서는 부조와 마찬가지로 돋을새김처럼 보이는 것이다.
                    돋을새김처럼 보인다는 건 깎이고 패인 자국에 작업 과정의 날카로움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크릴이 깎이고 파인
                    곳에는 예리한 자국이 남아 그 날카로움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보는 이미지는 그저 무수한 집적의 패턴이 지어내
                    는 부드럽고 섬세한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이런 시각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걸까. 이는 빛을 매개로 인한 일루전
                    에 기인한다. 어쩌면 빛의 작용이라는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기면서 아크릴이 깎여 나갈 때 생기는 예각의 날카로움조차 상쇄되는 것
                    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빛은 인위적인 조명이 아니라 자연의 빛을 말한다. 물론 전시장에서는 인위적인 빛으로 인해 더욱 극적인 시
                    각적 효과를 나타낸다.
                    그런 의미에서 깎아내고 파내는 작업에 조형적인 생명력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빛의 개입은 작품으로서의 가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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