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최현우 개인전 9. 6 – 9. 11 갤러리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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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의 필법筆法 여행기旅行記, 수묵화 일획을 터득해 보기 위한 필법 여행 기록과 논문 여정



            2000년 대학원 시절, 작가는 “일획(一劃)은 만획(萬劃)의 근본, 만 가지 형상(形象)의 근원”1)이라는 석도(石濤, 1642-1707?)의 수묵화(水墨畵) 일획론(一劃論)에 감동을 받아서, 일획을 깨닫기
            위한 필법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4년에 썼던 석사학위 논문 「수묵화의 용필법(用筆法) 연구」는 붓의 사용법에 관한 내용이다. 즉 용필법은 손으로 붓을 잡는 집필법(執筆法), 팔로 붓을 휘두르는 운필법(運筆法), 먹을 적당히
            머금을 때 생겨나는 긴 붓털의 탄성을 활용하는 필법(筆法)과 묵법(墨法), 내공 있는 필획을 긋기 위한 안정된 전신 자세 등의 탐구를 위한 첫 시도였다.


            2006년 초겨울부터 한동안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11.7)의 서거(逝去) 15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과 근교에 있는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추사의 진품(眞品)을 다수 전시한 덕분
            에, 그동안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일획으로 이루어진 추사 김정희의 서예와 난초 그림에서 나타나는 개성있고 자유로운 필획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어느 책에서 왕희지(王羲之, 307-365)가 〈난정서(蘭亭序)〉를 서수필(鼠鬚筆, 쥐수염붓)로 썼다고 전해지는 일화를 읽으면서, ‘과연 서수필로 어떠한 탄성과 질감의 붓 터치를 표
            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 후 20여년 동안 서울 인사동 여러 필방(筆房)과 북경(北京)의 인사동이라 불리는 유리창(琉璃廠)에서 다양한 종류의 붓을 100여개 이상 수집하
            였다. 서수필은 너무 귀해서 구할 수 없었으나, 그 대신에 청설모, 족제비털, 산마모(山馬毛, 야생말털), 백저모(白猪毛, 백돼지털), 우이모(牛耳毛, 소귀털), 여우털, 양털, 겸호필(兼毫筆, 두 가지 이
            상의 털을 섞어 만든 붓) 등과 같은 붓에서 서로 다른 함수력(含水力)과 질감, 탄성, 길이에 따른 차이점을 손끝으로 감지해보기 위해 시필(試筆)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2011년경에 ‘명작 안에 필법의 비밀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붓 장인에게 조선시대 명작이 담긴 간송미술관 도록(圖錄)을 들고 찾아가서 이러한 필획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붓이
            필요한지 여쭤 보았다. 그 장인은 도록을 살펴보고 거기에 실려 있는 수묵화 작품들은 양털로 그린 그림이 거의 없고, 주로 족제비털 붓처럼 탄성이 강한 붓으로 그린 것이 대부분이라는 말씀을 해
            주었다. 2016년에 작가는 그 장인에게 11cm 길이의 백저모와 산마모를 적절히 다르게 혼합한 4개의 붓을 주문 제작하여 시필해 보면서 뻣뻣한 갈필(渴筆)의 독특한 질감을 경험해 보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서화용필시 수완(手腕, 손과 팔)의 기하학적 구조 분석」이라는 소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마음 비움을 주제로 작품을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심수상응(心手相應, 마음과 손은 서로 응
            한다)이라는 화론에 근거하여, 손에 힘을 빼고 붓을 잡으면 예민한 손끝 감각으로 붓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손의 힘을 최대한 빼고 손끝으로 동
            그랗게 붓을 잡는 전통 서화(書畫)의 집필법과 운필법을 서양의 기하학과 연결시켜 설명하게 되었다. [일부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컴퍼스(Compass)와 자(尺) - 현완법懸腕法과 눈(目), 2) 수평
            수직선水平垂直線 - 완평장수腕平掌豎, 3) 원圓 - 용안법龍眼法, 4) 정삼각형正三角形 - 오지제력五指齊力, 5) 나선형螺旋形 - 소라껍질 모양(五指相次, 如螺之旋), 수장공허手掌空虛] 신기하게도
            이 논문을 쓴 이후로 10여년 넘게 꾸준히 작가 자신이 그림을 장시간 그릴 때 신체에 무리가 덜 가고 힘을 빼기 위한 전신자세, 운필법, 집필법 등을 교정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에는 10세기 수묵화가이자 화론가인 형호(荊浩, 870년경~930년경)의 『필법기』를 대학원 박사과정 수업시간에 분석하여 발표한 적이 있다. 그가 중국 태행산 근처 신정산(神鉦山)에 올
            라가 기이한 절경에 감탄하여 수만본(數萬本)을 그린 후 진경(眞景)에 가깝게 그리게 되었을 때,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 그림에 대해 질문하면서 필법을 배우게 되는 대화체로 이루어진 독특한 화
            론서로서, 수묵화가인 작가에게 신선하고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림의 요체인 육요(六要, 氣韻思景筆墨), 필세(筆勢, 骨筋肉氣) 등에 대해 서술한 뒤, 역대 화가들의 그림을 품평하는 내용이었다.


            2010년 겨울에는 「추사 김정희의 난초그림 필법筆法 분석 - 서화용필동법에 의한 삼전법三轉法을 중심으로」라는 소논문을 썼는데, 2009년부터 사군자를 가르치게 되면서 수묵화 일획의 관문
            (關門)이라 할 수 있는 난초 필획에 대한 탐구가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추사의 삼전법에 대한 붓의 수직운동을 그래프로 그려서 설명해 본
            것을 이 논문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았다.


            1) 石濤, 「一劃章第一」, 「苦瓜和尙畵語錄」. “一劃者, 衆有之本, 萬象之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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