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최현우 개인전 9. 6 – 9. 11 갤러리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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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마음 비움의 구현을 위한 수묵水墨 표현 연구 - 은일隱逸·무화無化·무애無碍를 중심으로」이라는 작가 자신의 작품을 분석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다. 마음 비움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철학적으로 설명해보고자 다양한 관점에서 공부를 한 결과, 2018년부터 4편의 소논문을 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2018년에는 「묵죽화담론墨竹畵談論」이라는 소논문을 쓰면서, 작가는 필묵으로 그리는 대나무 그림의 시조(始祖)로 평가받는 소동파(蘇東坡, 1036-1101)의 산문(散文)에서 그의 사촌형 문동(文
            同)과의 예술적 교류에 감동하였다. 또한 서예가이기도 했던 두 사람이 서예필법으로 대나무를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구현하였던 화법적 변용을 작가 자신이 탐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선비들
            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예술가와 문인화가가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 또한 원대(元代, 1279-1368)의 문인화가였던 조맹부(趙孟頫)가 묵죽화법을 처음으로 서예필법 중의 하나인 ‘영
            자팔법(永字八法)’에 대입시켜 조형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2019년에는 「유가적 관점에서 조선시대 문인사대부의 묵란화 연구」라는 소논문을 쓰면서, 왜 난초를 - 유가에서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상인 - 군자(君子)라 칭하고, 왜 난초 그림이 수양예술
            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난초 필획을 수묵화 일획의 관점에서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난초의 유가예술적 역사에 매료되어 이 논문을 쓰게 된 것이다.


            2020년에는 「굴원屈原의 「이소離騷」가 묵란화 형성에 끼친 영향 고찰 - 원대元代 정사초鄭思肖를 중심으로」라는 소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난세(亂世)의
            사람인 굴원의 장편서사시인 「이소」를 통해 슬픔과 한(恨)이 담긴 난초의 역사적 뿌리를 알게 해 주었다. 유배(流配, 귀양살이), 유폐(幽閉), 망국(亡國), 망명(亡命), 은거(隱居) 등 극도의 비애(悲
            哀)와 절망적 상황을 겪은 몇몇 선비들이 왜 난초를 치며 마음을 다스리고 수양하게 되었지에 대한 오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021년에는 「묵란화(墨蘭畵)에서 ‘난초 치다’의 역사적 근원 시탐(試探)」이라는 소논문을 쓰게 되었다. 2018년 봄에 ‘난초 치다’의 어원을 서예필법(書藝筆法)인 별법(撇法)이라고 추정할 수 있
            는 근거를 18세기 문헌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이에 대해 논증할 수 있는 자료들을 3년동안 조금씩 만나게 되어 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난초를 그린다 하지 않고 친다”라고 말하게 된 역사
            적 근원을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첫째, 붓을 휘두르는 원리인 운필(運筆) 동작 관점에서 ‘난초 치다’의 근원을 검무(劍舞, 칼춤)로 추정하였는데, 8세기 배민장군(裵旻將軍)의 검무에 영향
            을 받은 화가 오도자(吳道子)의 필획을 ‘난엽묘(蘭葉描)’라고 부른다는 점이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둘째, ‘난초 치다’의 역사적 근원을 서화용필동법(書畫用筆同法) 관점에서 볼 때, ‘난초 치다’의
            어원이 서예필법(書藝筆法)인 별법(撇法)이라 추정하고 논증하였다.

            요즘도 때때로 다양한 종류의 붓을 사용하며 난초를 치면서, 검무 동작과 별법에서 영향을 받은 난초 필획, 마치 검(劍)이 스쳐지나간 듯한 역동적이며 예리한 서미(鼠尾)로 마무리되는 난초잎
            일획을 어떠한 마음가짐과 운필 동작, 필묵 원리로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실험에 심취하기도 한다. 1998년 대학교 4학년 때 수묵화의 붓을 휘두르는 원리가 배민장군의 검무에 영향을
            받은 오도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작가 자신도 검도를 배우고 싶어했지만 여러 상황으로 계속 미루다가, 2015년부터 지인의 소개로 8개월정도 한국의 전통무예 기천무(氣天武)
            를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기천무를 하다 보니 무예(武藝) 대련(對鍊)할 때 보이는 공격성이 예술가의 감수성에 영향을 끼칠까봐 그만두게 되었다. 2021년 가을부터는 ‘난초를 치는’ 것 외에도
            공을 다루는 운동인 테니스와 배드민턴을 하면서 심신(心身)을 단련할 뿐만 아니라 필력(筆力) 향상에도 매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난초를 ‘치다’와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치다’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감사하게도 사군자(四君子)를 10년 넘게 가르칠 기회가 주어져서,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을 필묵으로 그리는 시범을 직접 보여주고 사람들의 다양한 신체조건과 상황
            에 따라 전신자세, 운필법, 집필법, 필묵법 등을 함께 고민해 보는 현장 경험이, 수묵화의 역사와 필법 관련 논문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상으로 화가이면서도 연구에 몰두하여 논문을 종종 쓰게 되는 경위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림을 그려도 부족한 시간에 옛 자료들을 찾아 헤매고 글을 쓴다는 것은 화가로
            서 모험이자 한편으로는 개인전도 많이 못해서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뫼의 필법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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