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윤인자 개인전 2024. 2. 28 – 3. 4 인사아트프라자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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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자의�숲, 숲이�말을�걸다.                                                         윤인자의�숲, 숲이�말을�걸다.





                  숲�그림이�작업실에�빼곡히�채워져�있다. 숲이�우리에게�말을�건다면�믿을�수�있을까? 영화에서나�나오는�이야기다.
                  시인이나�예술가라면�어렴풋이�이해를�한다고�하겠지만�과학적�입장에서는�말도�안�되는�이야기다. 만약�인간이�자연적
                  존재였다면�어떨까?

                  자연주의에�의하면�세계는�자기�조직화하기�때문에�자연적이라고�한다. 그�질서는�자체의�자발적인�것으로서, 자연스러운
                  운동과�함께�출현했다고�말하니, 작가의�작품은�자연스러운�운동의�발현이�아닐까�생각해�본다. 자연(自然)은�스스로
                  그렇게�만들어진�것이니까. 정말�노란, 파란, 빨간�나무들로�가득찬�숲들이�말을�한다. 작가는�에너지, 즉�숲의�기운이라고
                  말한다.


                  서양화를�전공한�작가의�풍경화는�동양의�산수화와�닮았다. 사실과�추상, 과학과�영, 물질과�정신, 몸과�마음�등�이분법적
                  사고를�넘어�형이상학의�입장에서�자연을�인간화, 다시�인간을�자연화한다면�작품의�내용에�가까워진다. 인간의�지배를
                  받는�자연을�서양의�풍경이라�한다면�야생의�자연을�우리는�풍경이라�할�수�있다. 자연은�인간에게�삶의�터전을�주었고,
                  근원이�되었고, 각자의�의미를�지닌�예술의�표현�대상이�되었다. 그래서�그�가치를�담고�있는�동양의�풍경화는�도가의
                  자연관까지�거슬러�올라간다. 작품의�제목마저�정령(精靈)이다. 영은�우리가�증명할�수�없는�기운이다. 그들만의�기운이
                  있다.  나무,  숲이라는�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자기� 환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이  ‘
                  자연스럽다’에서�나왔듯, 외부의�간섭이나�압력이�아닌�자발적으로�이루어진�현상이기에, 숲�작품은�우리가�인식되어�온
                  자연이라는�세계관을�지각하고�재현하는�방식과는�다른�결과로�다가온다.


                  그림은�아래에서�위로�자연스럽게�시선이�옮겨진다. 아래쪽�나뭇잎의�큰�붓�터치를�시작으로�위로�올라가면�갈수록�겹겹이
                  쌓인�나뭇잎�뭉치가�아지랑이가�일�듯�아련하고�흐릿한�형태로�보인다. 나뭇잎�사이사이로�보이는�가지가�없는�나무�기둥은
                  하늘에서�비가�떨어지듯�수직�하향을�한다. 나뭇잎들�사이의�색칠이�없는�특정�부분은�황모�캔버스의�거친�질감에도
                  불구하고�동양화의�여백처럼�남겨져�있다. 숲은�숲으로�보이지�않고�자신들의�삶의�영위를�위해�만든�군락이�되었다.


                  형식에서의�화려하고�강렬한�원색적�모노톤�색채보다는�숲속에�숨은�이야기에�관심이�가는�이유는�숲에는�동물, 식물,
                  심지어�사람까지�품어주는�혼이�있기�때문이다. 정령이란�갖가지�물건에�깃들어�있는�혼령이다. 작가에게�정령이란�자연이
                  스스로�말하는�이야기다. 작가는�자연을�지배하고�이용하려는�인간과�말없이�자신을�내어주는�자연�사이에서�망설임�없이
                  자연을�선택했다. 자연에�대한�정의를�오감으로�아는�감각적인�대상이�아닌�그�자체가�자발적으로�작동하는가에�있다는
                  자연주의의� 말처럼,  자연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발현한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지� 않아도� 자연은� 자발적
                  주체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파장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이점에� 주목하고� 있다. 스스로� 발현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제시하고자�했다. 가장�안정적이고�이상적이며�공존하는�자연, 그러면서도�그�속에�자신의�이야기와�우리들의�이야기,
                  작가의�이야기를�담아내고�있다. 도시의�삶에서�자연의�보편적인�기운을�생리적으로�느끼게�하는�것이�작가의�이야기다.


                  작가는� 캔버스의� 골이� 굵고� 넓은� 황모를� 사용한다. 그것도� 뒷면을� 사용한다. 그림이� 거칠고� 둔탁해질� 수밖에� 없다.
                  붓질보다는�나이프의�흔적이�많이�보인다. 색의�흔적들은�황모�캔버스�굵은�골의�이랑에�얹어�숲의�모양과�함께�각자의
                  이야기를�한다. 작가는�이런�자연에�관한�이야기, 숲에�관한�이야기와�우리의�삶에�관한�이야기들을�숲의�정령과�나눈다.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관장   구�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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