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샘가 2025.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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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의 통증
김필곤(열린교회 담임 목사, 기독시인)
푸른 하늘 아래
바람은 가볍게 속삭이고
흘러간 시간의 파편은
마음에 내려와
태극기 위에서
펄럭이며
흑백으로 갇힌
아우성은 멀리 잿빛 물결로
출렁입니다.
그 옛날
일제의 총칼 앞에서
일평생 새벽마다 무릎꿇었던
예배당에 갇힌 아픔은
바람이 불어도 지워지지 않고
불길 속에 꺼져버린 목소리들은 지금
역사의 깊은 주름에 새겨져 해는 여전히 다시 떠오르지만
눈 있는 자만 볼 수 있는 사진을 그날의 어둠은 열린 하늘에서도
남겼습니다. 제암리 땅을 적시고
계단 위에
사진 찍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고난을 넘어 빛이 되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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