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전시가이드 2024년 1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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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쉼터


        내 아버지


        글 : 장소영 (수필가)


































        날벼락이란 게 이런 건가 싶다.                               원, 퇴원을 반복하셔야 했고, 저승의 문턱 끝자락에서 오락가락하시며 우리를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한 달 전,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거실에서 주방      놀라게 하는 고난의 시간이 이어졌다.
        쪽으로 몇 발자국 내딛으시다 정신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쿵 넘어지시며 경
        추를 다치신 것이다. 전신에 마비가 온 상태로 응급수술에 들어가셨던 그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마저 시행되어 얼굴
        난 둘째 아들과 터키에서의 한 달 여행을 이스탄불에서 마무리하고 있었다.        도 뵙지 못하고, 상태도 알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손발하나 움직일 수
        여행하는 동안 사진을 보내면 즉각 답변을 해주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묵묵부       없는 몸으로 요양보호사에게 모든 걸 의존해야했던 몇 달이 아버지께는 지옥
        답이다가 갑자기 친정어머니께서 ‘네가 필요한데.’란 메시지를 남기셨다. 거듭      이었고, 우리에겐 고통이었다.
        확인해도 별일 없다 외엔 어떤 말씀도 없으셨지만 뭔지 모를 불안으로 뒤숭숭
        한 며칠이었다. 귀국까지 이틀을 남겨놓고 나서야 큰 아들이 ‘서둘러 오셔도       자유롭지 못한 몸 때문에 멀쩡한 의식으로 기본적인 배설, 식사, 목욕까지 남
        달라질게 없어요. 장기전이라.’며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수치셨을 것이다. 치욕스런 삶이라
                                                        더는 ‘죽더라도 집에 가서 죽어야겠다.’는 결단으로 집으로 오시길 원하셨고,
        심한 신경손상으로 위급한 상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고령이시기에 의사가 수        상황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하루하루 가슴이 타들어가던 우리도 아버지
        술 전 모습이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했고, 온가족이 급하게 모여 수술 전 과정      의 의지대로 재활치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모시기로 의견을 모았다.
        을 지켜야 했단다. 다행히도 무사히 수술실은 빠져나오셨지만 언제 풀릴지 모
        르는 마비로 오랜 투병의 시간을 보내게 되셨다. 딸은 그런 줄도 모르고 여행      병원생활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께서는 뵙지 못한 사이 그야말
        이나 다니고 있었으니 속이 엉망으로 뒤집어졌다.                      로 뼈와 가죽만 남아 계셨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쾌유를 응원했지만, 아버지
                                                        의 상태에 하나같이 곧 세상을 등질 거란 회의를 거두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귀국하자마자 병실로 향하니 푸석한 모습으로 ‘잘 다녀왔니?’ 밝게 인사를 건
        네시는 아버지 앞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힘들다, 아프다’ 호소와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머니의 정성스런 구완 덕분인지 하루가
        짜증을 내셔도 부족한 상태이실 텐데, 오히려 여행 잘 다녀왔냐 묻는 아버지       다르게 살이 오르며 눈빛에도 기운이 도셨다. 그리고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병
        와 이왕 간 여행 즐겁게 보내길 바라며 말씀을 아끼셨을 어머니의 마음 앞에       마를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하셨다. 스스로 일어서서 양치도 시도하시고, 엄습
        그저 죄송하기만 했다.                                    하는 통증에도 기구를 이용해 한 발자국씩 발을 옮기셨다. 하루면 집안에서
                                                        본인이 정해놓은 대로 걷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시더니 2년 만에 드디어 아파
        재활과정은 쉽지 않았다. 전신마비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질병       트 산책까지 하고 계신다.
        의 시작이었고, 지병까지 있으셨기에 매순간이 아슬아슬했다. 대학병원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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