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이정애 초대전 23. 12. 27 – 1. 16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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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緯線)과 날줄(經線)로 행복을 엮어 담은 항아리
이정애의 <길 위에 서서(꿈)>
한국적인 미를 상징하는 원형의 가치를 조형적으로 구현하는 기법은 다양하지만 그 대상에 내재된
사상과 정신, 원리와 방법까지 종합적으로 조형화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중견의
경지에 이른 작가 이정애는 가장 한국적인 기억 속의 이미지, 즉 원형의 상징물(archtype)인 ‘오방색
(五方色)’바탕의 둥근 항아리에 매재(媒材)의 물성을 적절히 조화시켜 현대인들의 삶과 염원을 재구
성한 작품을 구사하고 있다. 오방색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따른 한국의 전통색상으로 황(黃)·
청(靑)·백(白)·적(赤)·흑(黑) 등 자연의 원리에 의해 풀어낸 다섯 가지의 순수하고 섞음이 없는 기본색
을 말한다.
작가 이정애는 이 같은 ‘오방색’을 통하여 내부에 깊게 안착된 영원히 거부할 수 없는 우리 한민족의
정신적인 바탕이자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해 왔다. 불규칙적이고도 비정형적으로 바탕에
오방색을 펼쳐 놓은 후 금분이나 은분으로 전통적인 엮음 공예에서 보이는 패턴을 활용하여 마치 베
틀을 돌리며 한 필의 베를 짜듯 간절한 염원으로 형상을 만들어 나갔다. 여기에다 화면색의 유기적인
혼합으로 리듬감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저절로 생동적인 에너지의 파동이 느껴지도록 했다.
그녀의 작품에서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문양사이로 오방색프리즘 실루엣과의 만남은 구상과 반구
상의 공존, 시공간의 상존, 현실과 이상의 교류가 조형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렇게 구성된 화면은 일
정한 패턴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 느낌은 시각적으로 역동성과 긴장감에 젖어들어 촘촘하게 중첩된
형상으로 인해 마치 화면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현상마저 불러일으킨다.
특히 작가가 즐겨 표현하는 달항아리는 겉으로는 하나이면서도 실제로는 둘의 형상이다. 달항아리
는 둘, 즉 음양 화합을 이룬 상징으로 일반 도자기와 달리 큰 기형(基形)으로 인해 달항아리를 통째로
구울 경우 그 과정에서 자칫 주저앉게 된다. 그래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위아래(上下)
로 붙여 굽기 때문에 겉보기엔 하나지만 그 안엔 둘이 합쳐져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 이
정애는 작업을 할 때 회화상으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항아리 내부 까지 꼼꼼 하게 묘사를
하고 있다. 게다가 항아리 표면에 중첩된 선이 형성하는 분절된 표면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직조한
형상으로 독특한 입체감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