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유재성 개인전 2023. 8. 24 – 8. 30 갤러리 자작나무
P. 4
그림이라는 멋진 폭포를 만난 남자
매주 토요일 아침 성수동 골목에서 진행되었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잠깐학교 '1년 안에 그림 그리기' 클래스에
어느 날, 츄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찍찍 끌고 까칠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50이 훌쩍 넘는 나이까지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는 중학교 수학선생님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한 동안 수업 후 함께 하는 점심식사도 하지 않고 수업 끝나자마자 휑하니 뒤돌아 가곤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그림에 대한 성실함과 열정을 슬그머니 드러냈다.
그림을 공통분모로 하고 얼렁뚱땅, 희희낙락, 그저 함께 만나고 이야기하고 먹고 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누나들'과 달리 매주 수업에 전리품처럼 가지고 오는 아크릴화 작품과 드로잉의 양이 어마어마 해지며,
신기하게도 그의 그림은 한계가 없이 내달리는 자유로움의 확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겪어보니, 세상에나, 이렇게 따뜻하고 정 많은 남자였다니!
우리들의 선생님 최석운 화백, 그리고 쉽지만은 않은 '누나들'과 함께,
언제부터인가 이 남자가 없으면 수업 분위기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정말 몰랐다.
그 시간 동안 이 남자에게 일어난 변화의 용트림을 눈치채지도 못했고,
인생의 길을 바꿀 만큼의 용광로 같은 그림에 대한 열정은 더더군다나 몰랐다.
정년을 2년 남기고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격려를 받으며 조기퇴직을 강행하더니,
바로 그 다음 날 남쪽 끝의 끝 임하도 레지던시로 내려갔다.
기껏 2-3개월이겠지 했는데 추위와 지네에 시달리면서도 꽉 찬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슬쩍 보여준 몇 개의 그림들은
그 시간 동안 이 남자가 고뇌하며 몸부림치고, 때론 평온한 관조도 하며 치열한 해방감을 '즐겼던' 흔적이
그림의 완성도와 함께 고스란히 보였다.
그는 분명히 편안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보다는 불편하지만 성장하는 상태를 선택했다.
익숙한 것은 더 이상 탐구하고 새롭게 감상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아는 이 남자,
그 결과 고정된 시각이나 기법이 아니라, 다양하고 풍부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절대 불행해지지 않는다.
강물이 흘러갈 때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가 되듯이 똑같은 세월의 강을 그냥 흘러갈 수도 있었던 이 남자,
유재성 선생은 그림이라는 멋진 폭포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은퇴라는, 흔히들 생의 공식적 정리라고 여기는 지점에서 추락이 아니라 더 성숙하게 정점을 향해 나아가기
를 선택했다.
인생이라는 항해를 주저하지 않고 제대로 하겠다고 말이다...
이제 전업작가로서 단단한 '선포'를 한 셈이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