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기진호 개인전 2025. 3. 26 – 4. 12 갤러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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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풍선들
이 정 현 (문학평론가)
그가 걸어오네
양손 가득 풍선을 들고
“저기 풍선 장수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몰려들지만
그가 풍선을 파는 법은 없네
“이 황금과 맞바꿉시다!”
“원한다면 내 집이라도 내어드리리다”
그의 풍선은 너무 아름다워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그는 오직 노래만 한다네
텅 빈 하늘을 향해
죽음의 천사여 나는 당신이
이 땅에서 거두어가지 못한 것을
쥐고 있다네
그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질 때
풍선들은 고갯짓하며 장단을 맞추네
마치 그 안에 영혼이라도
담긴 것처럼
- 안 희 연 「풍선 장수의 노래」 부분(2020)
“저는 풍선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기진호, 2025) 라고 K(기진호)가 말할 때 많은 시인들이 그의 말에 호응했다. 물론 “그것(‘풍선’)으
로부터 얼굴을 구해내는 것”은 분명 “화가의 몫”이다.(앙토냉 아르토,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읻다, 2023, p.122, 괄호:인용자) 시작은 이렇
다. “풍선 하나를 안고서 바다를 건너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말이기도 한데, “이것은 눈 코 입이 있을 줄 알고 말을 할 줄 알고 깔깔
웃을 줄 알고 무서워할 줄 안다”(임솔아 「악당」, 2020). 한 풍선이 깔깔거릴 때 다른 한 “풍선은 벙글거리며 웃는다”(홍일표 「풍선 너머」,
2023). 한 시인은 ‘웃는 풍선’을 가리켜 “적절한 비유는 없다. 그것은 거품처럼 웃고 그것은 막 켜진 성냥처럼 웃는다” 라고 쓴 바 있
다.(이준규 「동그라미」, 2011) 웃음에 전염된 어떤 풍선들은 “네~ 하고 대답”에 맞춰 “물결처럼” “춤을” 추기도 한다.(유이우 「풍선들」, 2019)
화폭 가득 너풀거리는 풍선을 상상 중인데 이제 막 춤을 끝낸 풍선이 말한다: 나는 “입 주변을 하얗게 칠한 노랑 빨강 파랑이 가득한
사람이에요.”(이린아 「풍선 부는 사람」, 2023) 사람이라니. ‘사람-되기’를 마친 풍선이, 그것은 점점 “더 깊은 알 수 없는 되어짐을 향한 단
계”(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민음사, 1995, p.52)이기도 한데, 스스로를 뽐낸다. “한번 불리기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는 듯. 불리면서 부풀어 오르는 그것. 풍선의 말: “뽐내고 싶어지지 더 더 더 더 커지고 싶지.”(김사인 「풍선」, 2015) 은유로 기능했던 오
브제 ‘풍선’이 수사 修辭 를 벗고 스스로 사람이 된 어떤 순간을 시인은 그렇게 묘사한다. 어디 그뿐일까. 희 喜 다음은 애 哀 . 그러니 슬퍼
하는 풍선들, 마음껏 슬퍼하세요, “풍선이 슬퍼”한다.(이정록 「오래된 풍선」, 1994) ‘슬픔’에 겨워 “풍선들 발버둥치며”(최정례 「풍선장수가 있
던 사거리」, 1998) “문고리에 줄을 묵고 생사의 거리를 가늠하는 동안”(한세정 「풍선이 날아오르는 동안」, 2013) 어떤 풍선은 스스로 자신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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