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장국철 개인전 2024. 6. 11 – 6. 22 강릉아산병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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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과 시선의 새로움이 빚은 정물
정물화. 스틸 라이프(Still Life), 즉 ‘정지되어 있는 생명’이란 영어는 좋은 뜻이 아니었다. 베니타스
(Vanitas, 덧없음)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역시 정물화를 해석해야 할 때
의 칙칙하고 어두운 단면들이다. 정교하고 치밀한 사실 기법은 어떤가. 네덜란드 정물화가 이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해석 역시 트롱프뢰유(trompe-loe’ill), 즉 속임수 그림이란 평가절
하를 감수해야 했다.
얼핏 정교한 그림의 취향일 듯이 보이는 사실주의 지지자들은 또 어떤가. 재현론과 사실주의를 역설
하던 루카치도 하나하나의 세부에 치밀한 네덜란드 정물화는 자연주의 취향이라 하여 자신의 사실주
의 구현 목표에서 제외했다. 그런데도 장국철은 끊임없이 이런 그림을 그렸다. 온갖 실험과 날 것 그
대로의 취미가 예찬되는 이 시대에 그것은 그저 한물간 취미처럼 보이기 쉬운 그림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그렇기만 할 뿐인가. 단선적인 시각은 언제나 커다랗게 구멍 난 오류들을 달고 다닌
다. 인상주의 이후 저금의 장르였던 풍경화가 복권되었던 것처럼, 최악의 장르로 취급되던 정물화 역
시 위상을 회복한다.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운동인 큐비즘은 정물화에서 그 본연의 방법론을 발전
시켜 나갔다. 극사실 기법은 하이퍼리얼리즘에서처럼 이 시대에 오히려 저항의 기법이 되기조차 했
다. 장국철의 화법을 퇴물 취급하는 것이야 말로 요즘의 예술 트렌드를 모르는 한물 간 시각이기가
쉬운 것이다.
그는 무엇을 그리도 열심히 그리고 있는가. 하나같이 예스런 소재들이다. 색동옷감, 광목 같은 옛 옷
감들이나 놋그릇, 옹기, 자기 같은 예전의 정서를 드러내는 소재들. 이런 해묵은 골동품 역시 신선함
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다고 그것을 추억과 기억을 소진할 뿐 새로운 창조를 담아내지 못하는
소재라고 볼 일이 아니다. 정(情), 다시 말해 미감을 울리는 정서와 같은 것이야말로 새로움을 끊임없
이 생성해내는 닫히지 않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장국철은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향수를 작품으로 얘기하려 한다.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바느질
은 그대로 삶 속의 예술이었다. 그에게 그 많은 삶의 지혜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좋은 기억은 아직
도 그에게 끊임없이 샘솟는 삶 속 지혜의 원천이 되고 있다. 비록 옷감으로 직접 만들고 새기지 않아
도, 그는 바느질 이상의 많은 것을 그 속에서 만들어 낸다.
도기 같은 정물에 군데군데 찍히는 흰 점도 눈에 띈다. 원래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밝은 지점에 찍히는
흰 포인트야말로 도자기를 생동감 있게 하는 표현이다.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것에서도 콧등이나 눈
동자 속에 반사되는 흰 점을 찍은 것은 살아 있음을 표현하는 화룡점정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
속의 옹기나 자기, 놋그릇의 흰 반사점은 그림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표현으로 가볍게 지나쳐 버리
기 쉽다. 하지만 그 반사점을 다시 살펴보자. 그 흰 포인트는 넓은 표면의 반영들 속에서 빛난다. 그림
속에 서 있는 주요 소재들은 거의 모두 반사되는 이미지를 품고 있는 것들이다. 놋그릇에 비치는 색
동옷, 백자나 항아리 어느 것이든 바닥에 놓인 모든 것들을 비쳐낸다. 그렇게 천정 어딘가에 있을 빛
도 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옛것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점이다. 놓여있던 방의 풍경 전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