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전시가이드 2024년 06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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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Raymond Peynet, Poissons, 76x56cm, Engraving On Arches Vellum, 1979 ⓒADA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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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그려 나갔다. 임경희 작가는 자신을 얽매고 있던 끈을 스스로의 의지로 풀      선박을 바라보는 연인의 모습을 묘사했을 것이다. 임경희 작가도 마음속으로
            고 세상밖으로 나가려는 희망사항을 표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발견한 자유롭게 <영혼의 안식처> 주변을 유영하는 물고기로 승화되어『노닐
            다른 작가들과 전시도 자주 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혼과       다』로 표현한 것이 아닐지 싶다.
            육아기의 공백기간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더욱 도전적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지금은 그녀 스스로 자발적인 노력으로 예전보다 더 자신감을 가지고 시와 도       결론적으로,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 회원 작가들 가운데서도 임경희 작
            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면서, 교육과 예술        가는 구속된 분위기의 정체된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난「자유로움」을 추구한다.
            분야의 활동들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아트 홀릭≫ 이라는 간판을 단 공방       그렇지만 그 길을 홀로 가기에는 너무나 외롭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 함께 동
            을 운영하며 많은 일을 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은 2차원의 ‘평면작업’     반해줄 ‘짝’이 필요하지 않을지.  바로 그 짝이 ‘그림’이었고 그녀에게는 최상의
            과 3차원의 ‘입체작업’을 접목시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어한다. 여기      ‘연인’이 되어 줌으로써 비로소 자유롭게 노닐게 되는 것이다. 마치 세월이 흘
            서, 임경희 작가 고유의 『물고기』작품을 관심있게 주목하던 필자는 -물론 우      러도 변함없는 연인들의 사랑이 레이몽 페이네의 천재적인 펜의 끝에서 다시
            연의 일치이겠지만- 그녀와 유사한 상상력을 발휘했던 프랑스 출신의 거장 레       재현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레이몽 페이네와 동일한 심성을 보유한 임경희
            이몽 페이네(Raymond Peynet)의 자유로운 발상을 역 추적(Traceability) 해  작가도 그녀의 대표작『노닐다』를 통해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든지 감상하더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너무도 잘 그려 내는 '사랑의 연금술사'      라도 자기들의 사연을 다시 새겨 볼 수 있도록, 이 세상의 모든 연인들에게 선
            로 불리우는 레이몽 페이네는, 한 장의『만화』그림 속에 한 쌍의 연인들의 일상     물하고 있는 셈이다. 레이몽 페이네는 20세기 초에 파리에서 태어나, 시와 그
            을 담아 내었다. 남 프랑스에서 지중해를 향한 해안 마을 중에 아름다운 도시      림의 예술적 수업기를 거치고 젊은 시절부터 잡지와 신문에 그림을 발표하기
            를 꼽으라 하면 주저 없이 앙티브(Antibes)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앙   시작했다. 그의 재능은 처음부터 빛을 발했다. 그가 그리는 문예작품의 삽화
            티브는 그리스인들이 조성한 마을로 시작해, 로마의 세자르에게 정복당하면         는 주목을 끌었고 연극과 발레의 무대장치도 화제가 되었다. 그는 ≪국제 만
            서 주인이 바뀐 역사를 가진 곳으로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워 루이 14세 때 카     화제≫에서「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레이몽 페이네
            레 성곽을 건설되었다. 레이몽 페이네 역시, 1947년 처음 여름휴가로 앙티브     를 재발견하는 것은 그의 ‘천재적인 감각’ 이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그의 여유
            를 찾은 후부터 자주 찾을 정도로 앙티브를 사랑했고 이 사랑은 줄곧 이어져       있는 시각에 있다. 같은 관점에서 무엇보다도 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은, 언제
            1976년부터는 앙티브에 정착해 생애를 이곳에서 마감했다. 레이몽 페이네의       나 웃음을 잃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본다는 점에 있다. 레이몽 페
            그림은 시적이다. 초현실적인 세상을 단순한 선을 따라 몽환적인 세계로 이끌       이네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도 유려한 말솜씨가 필요 없는, 훌륭한 ‘시의 혼’
            며 그 안에는 사랑과 평화가 담겨있다. <에로티시즘>도 살짝 엿보이는 초현       을 지니고 타고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레이몽 페이네가 세계적인
            실적인 사랑의 세계가 시와 음악을 보고 듣는 것처럼 흐른다. 남자 캐릭터는       〔ADAGP 글로벌 저작권자〕로써 인정받은 계기는, 『연인들』시리즈가 잡지와
            신사로 낭만적인 시인의 모습이고, 여자 캐릭터는 말총머리에 균형 잡힌 몸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할 무렵에 문학작품의 삽화로 게재되면서 대중적인 인
            에 포근한 솜사탕 같은 부드러운 느낌으로 사랑스럽다. 앙티브도 레이몽 페        기와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보라. 또한 그의 손길이 닿은 연
            이네의 『사랑스러운 연인들』처럼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한 여름의 재즈 선율       극이나 발레의 무대장치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큰 반응을 일으켰다. 아무쪼록
            이 흐르는 지중해의 해변을 거닐며 올 여름을 보낸다면, 마치 ‘이보다 더 좋을     임경희 작가 또한〔ADAGP 글로벌 저작권자〕로 등재된 마당에, 말보다 실천을
            수 없다’라는 영화제목처럼 환상적인 곳이다. 아마도, 레이몽 페이네가 작품       앞세우며 ‘새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작가로써 나날이 황폐해가는 세상 속이나
            『Poissons』을 통해 과거 <사랑의 보물>을 실어 나르다가 난파된 고대 그리스   마 일관성 있게 ‘정체성’을 지키며 노닐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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