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한국민화의 조망전 2023. 2. 1 – 2. 27 갤러리더원미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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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원 (월간)미술세계와 갤러리 보아 23년 신춘민화초대
2023 한국민화의 조망展
우리나라 민화는 애초부터 형통한 삶을 감사해서 부르는 찬양이 아니었다. 반대로 사회적 불만족을 대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예술로 승화
된 것이었다. 그것으로 민중 층의 백성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던 그림이었다. 민화가 융성하던 당시 서민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이 신분적 불
평등 제도에 의해 겪는 억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더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한 겹 덧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환난은
실로 대단했다. 천지를 제 멋대로 휘돌며 괴롭히는 여러 가지 전염병들로 인해 환갑 이상만 살다가 죽어도 호상(好喪)이라고 축하하는 문
화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또 당시 세기 말 서민의 가난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던 정도였다는 걸 모르는 이 없다. 이러
한 한(恨) 많은 세상 속에서의 원한(怨恨)을 원한으로 비관만 하기보다는 오히려 정한(情恨)의 상상력으로 바꿔내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
웃의 행복을 창출해내던 존경스러운 조상이 바로 민화(民畵) 화가들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행복을 희구하는 스토리텔링과 함께 21세기에
와서 봐도 놀라울 정도의 현대미술적 요소들을 가득 담고 있는 훌륭한 미술이다.
오늘날, 선진 국가로써의 위상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인데도 아직까지 예전에 조상들이 겪던 대부분의 사회적 애환은 날로 증가하기만 한
다. 굶거나 헐벗은 사람이야 이제 거의 없다지만 이런저런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히 사라질 줄 모른다. 금 수저, 흙 수저, 똥 수저 등의 신분
적 차별의 횡포들이 뉴스를 타고 오르내리며 현대인을 괴롭힌다. 서민이 겪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경제를 중심으
로 하는 OECD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아픈 소식을 당연시 해야만 하는 우리의 모습이 비관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 속에서 요즘 우리의 민화는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가 궁금해진다. 그 수준은 오늘날에 만족할만한 정도인가?
민화를 실용음악계처럼 세계적 인기를 지닌 실용미술로 일으켜보자는 논의가 한창인 이 때, 과연 우리의 현대민화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기획자는 이러한 점을 가식 없이 읽어낼 만한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기획전의 참가인원을 모으는 단계에서 느꼈던 느낌은 전국의 민화인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 몸에 와 닿았다. 이번 기획전의 당초 출
품자 수 목표가 200명이었는데, 전국의 여러 민화작가 동지들이 도와주어 어렵지 않게 그 목표를 훌쩍 넘어버렸다. 그래서 최종 전시인원
이 240명이 되었다. 초과된 작가들을 단지 선착순을 이유로 잘라내기 섭섭해서 모두 다 함께 가기로 한다. 이 인원을 모집하면서 협조해주
신 전국의 민화 작가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린다. 아직도 우리의 초대의사를 알지 못해 동참치 못하는 작가들이 전국에는 부지
기수일 것이다. 비공식 집계이긴 하지만 전국의 민화화가들 숫자가 이미 한참 전에 3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언젠가 저들을 다 한 자리에
모아 민화인구의 위상을 드러낼 필요를 느낀다. 그런 규모의 일은 나 같은 화가가 감당하기엔 벅차다. ‘전국민화화가 통합전’ 또는 ‘전국민
화화가 지역별 통합전’ 등은 머지않아 미술행정가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이번 기획전은 2월 한 달간 4회에 걸쳐 전시된다. 전시 방법은 창작, 리메이크, 그리고 재현민화까지 장르 구분을 없애고 한 자리에 함께
걸린다. 이 방법은 재현, 리메이크, 순창작 등 세 가지의 장르들이 한 자리에 모임으로써 관람하기가 좀 어지러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요즘 화단에서 작업되는 세 가지 장르의 민화를 바로 옆에 놓고 비교하면서 보는 이점이 있다. 또 향 후 창작과 재현의 활동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세기의 민화작가님들은 사회적 스트레스를 동기(動機)로 이웃의 행복을 위한 미술품을 만들어내던 슬기로운 전통을 남긴 분들이셨다.
그들의 후예인 우리 현대민화가들도 사명감에 젖은 행복전도사로 이웃과 사회에 쓰임 받는 민화화단 분위기를 만들어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민화작가들은 전통의 의미를 과거형으로만 한정해서는 곤란하다. 미래지향적인 현대민화 개념 정립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
요한 것이다. 즉 재현민화는 과거의 의미를 굴절없이 오늘에 살려내는 일을 해야 하고, 창작민화는 과거의 정신적 전통을 이어 오늘의 현
대민화를 만들어내면서 서로의 특성을 드러내야 민화화단이 건강해질 것이다. 아울러 민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관람자분들께서는 민화야
말로 우리 민족이 남긴 민족정신의 뿌리와 보루가 된다는 점을 기쁨으로 품고, 이 시대 민화의 전 장르 작가들을 격려해주시길 간곡히 부
탁드리는 바이다.
기획 및 총감독 설촌(雪村) 정 하 정(창작민화연구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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