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샘가20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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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그 일행이 다시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에브랏에 이르기 전에 라헬의 산고
            가 시작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16-21) 아이를 낳는 라헬의 산통이 아주 극
            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파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 힘을 내라 격려했지만 결국 라
            헬이 난산으로 인하여 죽게 됩니다. 죽으면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릅니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는 어머니 라
            헬의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고쳐 짓습니다.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그의 마지막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으로 지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구원사적으로 열두 지파의 기초가
            되는 열두 아들의 완성인 막내아들로서 고통을 기쁨으로 보상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라헬을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하고 묘지를 세웁니다. 다시 길
            을 떠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표기되고 있다
            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베냐민의 출생과 함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기틀이 마련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22-29) 막내 베냐민이 태어나고 이스라엘의 기초가 마련되
            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장남 르우벤으로 인하여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르
            우벤의 패역한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이스라엘이 들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의아한 것은 이 일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본
            단락에서 야곱의 열두 명의 아들들이 소개됩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순서는 본처의
            자식들, 그리고 첩 중에 연장자의 자식들의 순서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
            두가 밧단아람에서 낳은 자라고 전합니다. 그런데 라헬이 마지막으로 낳은 아들 베
            냐민은 밧단아람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베냐민은 에브랏, 즉 베들레헴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아들을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라고 말합
            니다. 창세기의 기자는 이 열둘을 각각의 존재로 표현하기보다 하나로 표현하여 다
            함께 우상의 문화 밧단아람에서 빠져나왔고, 이제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삶에 문제는 끊임없이 계속 됩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삶의 문제 속에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마귀의 방법은 언제나 기도보다 사람의 무엇을 앞세우게 합니다. 마귀의 목표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
             를 멀리하게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데 있습니다. 죠지 뮬러는 기도를 모든 일보다 제일 앞
             에 순서로 놓았습니다. 기도를 둘째로 돌리는 것은 하나님을 둘째로 여기는 것과 같은 잘못된 것으로 여
             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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