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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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대동보』(己丑大同譜·2009년  9차수보·회장  김원하)를  발간하면서  2007년부터

              여러 차례 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대동보 편찬위원회의 규약제정, 위원회를 구성. 실무에
              임(任)하도록 하였고 그동안 계속 논의 되어오던 시조정립(始祖正立)을 확고히 함이 후손
              의  도리라  이를  위한  보학연구위원회(譜學硏究委員會)를  구성하여  각종  고증문헌(考證文
              獻)에 의하여  경순왕(敬順王)  제8자 삼척군(三陟君) 휘(諱) 추(錘)께서 시조(始祖)로  되셔

              야  함을  총의(總意·2008년  10월  15일  臨時總會)로  확인(確認)하여  시서수보(始敍修譜)
              하여 12만 종인의 숙원(宿願)을 이룩하고, 시조(始祖) 삼척군(三陟君) 휘(諱) 추(錘)와 실
              직군왕(悉直郡王)  휘(諱)  위옹(渭翁)의  부자양대(父子兩代)가  영예로운  조상(祖上)  되심에
              긍지를  갖게  되고  자손만대(子孫萬代)에  변함없이  선조의  덕업을  밝히고  후손들이  계승

              하여 국가사회발전과 더불어 영원히 창성(昌盛)하기를 기원하였다.

                시조  삼척군(始祖  三陟君)의  위패(位牌)는  기존의  숭모사(崇慕祠)에  삼척군(三陟君)  추
              (錘) 위패(位牌)를 시조(始祖) 삼척군(三陟君) 추(錘)로 추존(推尊)하여 봉안(奉安)하였다.


              『기축대동보(己丑大同譜)』발간  과정인  2007년  10월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에  삼
              척군(三陟君)  추(錘)와  실직군왕(悉直郡王)  삼척  김위옹(三陟  金渭翁)의  위패(位牌)를  봉
              안(奉安)하였다. 또한 2010년 2월 시조(始祖) 삼척군(三陟君) 휘(諱) 추(錘) 영정(影幀)을

              제작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  충공신각(忠功臣閣)  전시실에  봉안(奉安)하고,  보본단
              (報本壇) 시조 삼척군묘(始祖 三陟君廟)에도 봉안(奉安)하였다.

                같은  시기에  통일대전(統一大殿)  중앙계단(中央階段)  돌기둥에  실직군왕묘(悉直郡王廟)

              주련시(柱聯詩)를 각인 게재(刻印 揭載)하여 오가는 사람들이 즐겨 보도록 하였다.

                2011년  12월  강원도로부터  보본단(報本壇·당저동  75번지  임야,  77번지  대지  등2필
              지)이  기념물  제15호의  보호구역으로  확대  지정되어  국비로  관리할  수  있는  계기가  마

              련되었다.

                2015년 5월, 2007년부터 추진해 온 성씨 조형비(姓氏 造形碑·삼척김씨의 유래)를 대전
              시  중구  대전  효(孝)월드(world)뿌리공원에  설치  완료.  공원  족보박물관(公園  族譜博物館)
              에는『기축대동보(己丑大同譜)』를 전시하였고, 같은 해 봄 숭모사(崇慕祠) 편액(扁額)을 시

              조 삼척군묘(始祖 三陟君廟)로 게시하였다.

                시조  삼척군대제(始祖  三陟君大祭)는  실직군왕대제(悉直郡王大祭)와  같은  날(陰  3月
              15日) 오전  8시에  봉행(奉行)하고  있는데  1970년(경술庚戌)에  실직군왕묘(悉直郡王廟)에

              서부터  낭하(廊下)  대문(大門)  부속건물(附屬建物)  일체를  일신(一新)하여  이듬해(1971년
              신해辛亥) 늦은 봄에 묘우중건(廟宇重建)하니 그 규모가 배가 되고 단청이 환히 밝게 되
              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重修)를  하고  담장도  보수하였으나  시조  삼척군묘(始祖  三
              陟君廟)는  여전히  협소(狹小)하여  매년  대제  시(大祭時)  국궁(鞠躬)  진퇴(進退)하고  소목

              (昭穆)별로 차례를 정하기가 매우 불편한 것이 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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