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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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실직군왕 묘우중건기(悉直郡王 廟宇重建記)






                삼척은 산천(山川) 경치가 영해(領海)에서 제일 아름답다. 부(府) 동편 한쪽 산세가 더
              욱 아름답고 소나무, 가래나무가 우거진 곳에 집 한 채가 우뚝하게 남쪽을 향해 서 있는
              데 바로 실직군왕의 사당이다.


                지난  단기(檀紀)  사천오십삼년(서기1723년)  경자(庚子)에  후손  오정공(梧亭公)이  종인
              들과  의논해서  창건하였는데  그  후  2백여  년  오랜  세월  비바람에  상한  것을  후손들이
              잘  수호해  왔는데  뜰과  주위가  좁아서  제사를  모실  때  매양  국궁(鞠躬)  진퇴(進退)하고

              소목(昭穆)별로 차례를 정하기가 매우 불편한 것이 유감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경술년  봄  문중  의논이  일제히  일어나  정청(正廳)에서부터  낭하
              (廊下)  대문  부속  건물  일체를  일신(一新)하기로  결의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먼저  종

              중에서  재력(財力)을  모으니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으로  각기  성금을  낸  것이  수백  만금
              이나 되었다.

                즉시 그 위로 10보 남짓의 땅이 조금 평평하므로 터를 잡고 원덕(遠德)에서 재목을 구

              하고  무릉(武陵)에서  석재를  운반하여  설계대로  다듬어서  준공하니  그  규모가  전보다  배
              나 되고 단청이 환히 밝게 되었는데 그때 이 역사를 감독한 자는 불초 광수(洸壽)였다.

                이듬해  신해  늦봄에  낙성(落成)하니  우리  집안의  경사치고  이보다  더  큰  경사는  없었

              으니  이  모두가  선조들께서  쌓으신  음덕(蔭德)이  아니겠는가?  죽루(竹樓)에  부는  맑은
              바람과  봉대(鳳臺)의  밝은  달이  사시사철  그치지  않으니  상상하건대  영령들께서  이곳에
              오르내리시어 비록 백대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후손은  선대의  덕을  계승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임을  명심하여  각자  힘

              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단기 사천삼백사년(서기1971년) 신해(辛亥) 三월 하완(下浣)



                                                                           후손(後孫) 형석(炯錫) 삼가 지음.


                                                                               <己丑大同譜一卷 16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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