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283
10. 실직군왕 망제단비(悉直郡王 望祭壇碑)
망제단기(望祭壇記) 후 八년 정미(丁未)에 시정(始鼎)과 주호(周鎬)는 유의(遺意)를 계
승하여 여러 종인들과 의논하여 재사(齋舍) 六칸과 요사(寮舍) 六칸을 단(檀) 아래에다
지었다.
삼가 상고하건대 공부자(孔夫子)의 가르침 가운데 망묘단(望墓壇)에서 제사를 지내라는
글이 있는데 지금 우리 실직군왕(悉直郡王)의 단 역시 이에 의거하여 설치한 것이 아니
겠는가?
아, 실직군왕의 휘(諱)는 위옹(渭翁)이니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삼척군(三陟君)의
원자(元子)로 실직에 수봉(受封)되어 그대로 거기에 살았으니 마땅히 묘소도 이곳에 있어
야 하는데 세대가 멀어서 징험할 바가 없어 아직껏 제사를 지내지 못해 이것이 후손들
의 지극한 한이다. 갈야산(葛夜山) 및 사직(史直)에 보통 무덤보다 다른 봉분 두 개가 있
는데 고로(古老)들이 서로 전하기를 실직군왕 양위(兩位)의 무덤이라고 하나 불행하게도
비석이 없다.
무술년 가을에 불초가 여러 종인들과 함께 택일(擇日)하여 제사를 지내 고하고 그 땅
을 찾아보니 기와 조각 몇 개만 있고 달리 근거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갑자기 잘못 선
문(羨門)을 뚫고 보니 돌을 쌓아 만든 흙담으로 광(壙)을 넓게 만들고 그 안에 장대한
체해(體骸)가 있는데 산의 형세를 따라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손을 평시처럼 뻗고 있는
것이 염을 하지 않은 듯 했다.
아직도 옷의 형상이 남아 있었는데 관곽(棺槨)의 흔적이 없어 지금 장례하는 풍속과
크게 다른 비범한 사람의 무덤이었다. 즉시 다시 봉하여 위안(慰安)하고 후일에 또 갈야
산에서 지석(誌石)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그 묘역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사직(史
直)과 한가지였다.
이에 다시 여러 종인들과 함께 말하기를“이는 비록 의심스러운 듯 한데 어찌 믿지
않겠는가. 대개 옛 노인들이 전하는 말과 읍지(邑誌)의 기록을 보건대 갈야산 아래 월계
(月桂)는 바로 우리 시조의 유지(遺地)요 그 위 절벽에 어정(御井)이라고 부르는 곳은 우
리 시조의 옛 우물이다.
생각하건대 천 년 전의 어둡지 않은 영령께서 그곳에 오르내리실 것이니 지난번 말한
이른바 망제(望祭)하는 예를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하니, 모두 좋다고 하였다.
그 이듬해 봄에 재정을 모아 공사를 시작해 월계 동쪽 해좌(亥坐) 언덕에다 단을 만들
고 비석을 세워 명(銘)을 새긴 다음 주위에 담장을 치고 문각(門閣)을 세웠다.
제4편 보본단기(報本壇記) 2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