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7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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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실직군왕 · 왕비 양릉실기(悉直郡王·王妃 兩陵實記)
근원이 없는 물은 파도가 일지 못하고 뿌리가 없는 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하지 못
하며 사람에게 선영(先塋)이 없으면 어떻게 제사를 지내겠는가? 지난 무술년 가을에 우
리 증조부 오정공(梧亭公)이 묘역을 구분할 수 없는 것을 개탄하여 여러 종인들과 함께
두 능을 열어보았더니 다만 기와 술통 몇 개가 나올 뿐 고증할 만한 지석(誌石)이 없기
때문에 즉시 다시 봉분을 쌓고 슬피 피눈물을 흘리며 돌아와 여러 사람들과 의논해 단
사(壇舍)와 제각을 월계(月桂) 동쪽 해자(亥子) 언덕에 지어 한 해 한번 망사(望祀)해 온
것이 이제 一백여 년이 되었다.
금년에 이르러 갑술보(甲戌譜) 역사를 시작해 각 군의 여러 종인들이 단사에 일제히
모여 모두 말하기를「옛 노인들이 서로 전해오는 말이 귀에 쟁쟁하고 부지(府誌) 문헌에
서 징험해 보아도 확연하다.
갈야산(葛夜山) 경태용해입수건좌손향곤득을파(庚兌龍亥入首乾坐巽向坤得乙破)는 실직
군왕의 능이요 사직산(史直山) 오정용정입수미좌축향술득진파(午丁龍丁入首未坐丑向戌得
辰破)는 군왕비(王妃) 박씨(朴氏)의 능이다 라고 하였다.
이를 물에 비유하면 근원이요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라 하겠다. 감모(感慕)하는 정성이
애연하여 갈수록 더욱 독실하고 효제(孝悌)의 마음이 뭉클하게 일어나니 열 종인들에게
바라건대 돌을 캐다 상석(床石)을 삼고 묘도(墓道)에 비석을 세우면 선조에게도 빛이 나
고 후생들에게도 생광스러운 일이다.
또한 정령(精靈)께서 오르내리는 장소가 여기서부터 생기고 제사를 지내는 정성이 이
에서 다 갖추어지게 될 것이다.
자자손손은 백세 후 라도 훼손되는 대로 보수해서 부지런히 가꾸면 두 능을 분명하게
알 수 있고 끝내 의심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니 추원보본(追遠報本)하는 도리도 무궁하게
되지 않겠는가?
갑술년(一九三四) 국추(菊秋) 상한(上澣)에 후손 학영(鶴禜)은 삼가 씀.
<三陟金氏大同譜1卷>
제4편 보본단기(報本壇記) 2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