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9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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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이협이  교생(校生)  박대수(朴大守),  호장(戶長)  김상구(金尙矩)에게  서대를  받들고

                       서울로 가 예궐(詣闕)하게 하니 계유년 十二월 三十일이었다.

                        갑술년  정월  초하루에  임금이  영수각에  행차하여  배알(拜謁)할  때  삼척호장  김상구
                       가  삼가  태조의  홍서대,  목조(穆祖)  황고(皇考)가  있는  노동산도(蘆洞山圖)와  목조의

                       황비(皇妣)  능이  있는  동산산도(東山山圖),  홍서대  기록을  적은  책자를  가지고  섬돌
                       아래에 엎드려 오래 기다렸다.

                        임금께서 두루 보시고는 기뻐 말씀하기를“올해는 바로 우리 성조(聖祖)께서 나라를

                       세운지  三년  되는  해요  또  기사(耆社)에  들어가신  해이기도  하다.  이  홍서대는  바로
                       우리 태조께서 띠시던 것이요 목조의 외갓집 삼척은 실직군왕 위옹(渭翁)의 무덤이 있
                       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조께서 특명으로 삼척부에 내려 보내고 군(郡)을 부(府)로
                       승격시켜 그 부를 빛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열성조(列聖祖)를 배알할 때 내가

                       보대의 운한광(雲漢光)을 구경하니 나라의 기이한 상서(祥瑞)이다. 운한광을 보니 마치
                       선왕을 다시 뵙는 것 같다.”라고 하셨다.

                        임금께서  감개하여  앉아계시자  영상(領相)  김재로(金在魯)가  아뢰기를“이  홍서대는
                       명(明)나라  때의  고물(古物)이어서  태조의  손때가  아직도  묻어  있고  품질이  아주  좋습

                       니다.”하자  임금께서“그렇다.”하셨다.  병조판서  이익정(李益炡)이  아뢰기를“이  홍
                       서대의  사적이  고상(故相)  허목(許穆)의  문집  가운데도  기록되어  신  역시  읽어보았습
                       니다.”하니 임금께서“그런가?”하시고는 친히 홍서대를 안고 환궁하셨다.


                        정월  초二일  육상궁(毓祥宮)에  거동하실  때에  상께서  이르시기를“삼척부에서  홍서
                       대를 가지고 온 김상구는 즉시 입시하라.”하셨다.

                        김상구가  육상궁  계단  아래에  엎드려  기다리고  있었는데  임금께서  친히  산도(山圖)

                       및  홍서대기를  열람해  보시고는  묻기를“노동의  능은  어떤  형국의  산이며  동산의  능
                       은 어떤 형국의 산이며 집터는  어디에 있는가?”하시니, 김상구가 아뢰기를“목조  황
                       고가  있는  노동  신좌  을향(辛坐乙向)은  호랑이가  엎드린  형상에  용이  태어날  안산(案
                       山)이니  만대  군왕의  땅이요  목조  황비의  능이  있는  동산  묘좌유향(卯坐酉向)은  가까

                       운 안산은 낮고 먼 안산은 높으며 수구(水口)가 빽빽하여 후손이 왕이 될 터라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  시골  노인들이  전해오는  말입니다.”정철(鄭澈)이  강원도를  안찰할  때
                       장계(狀啓)한  산도(山圖)  가운데  아뢰기를“신의  아비가  일찍이  평창군수(平昌郡守)를
                       지냈는데  신이  그  고을에  따라갔었는데  그  군은  바로  효공왕비(孝恭王妣)의  친가였습

                       니다.  그래서  태조께서  서대를  하사하여  호장(戶長)으로  조복을  입고  비단  장막을  치
                       고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지금  전하의  은전(恩典)이  삼척  김인궤(金仁軌)의  자손이
                       띠를  하사받은  것과  같습니다.”하니,  임금이  웃으며  말씀하기를“과연  경의  말과  같
                       구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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