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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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보본단 보수 정비기 (報本壇 補修 整備記)
실직군왕(悉直郡王)의 재실(齋室)은 실직군왕(悉直郡王)께서 삼척(三陟)에 세거(世居)한지 일
천 수백여 년(壹千 數百餘 年)의 역사(歷史)속에 능소(陵所)를 실전(失傳)하여 한(限)스럽게 팔
백여 년(八百餘 年)을 지내 오다가 후손 오정공(後孫 梧亭公)이 종인(宗人)들과 함께 1838년
무술년(戊戌年)에 양릉(兩陵)을 확인(確認)하고 단사(壇舍)와 제각(祭閣)을 월계 동편 해좌(月
桂 東便 亥坐) 언덕에 설단(設壇)하여 망제(望祭)를 시행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그 후 이백여 년(貳百餘 年) 오랜 세월(歲月) 비바람에 상(傷)한 것을 후손(後孫)들이
잘 수호(守護)해 왔는데 1971년 신해년(辛亥年)에 문중(門中)에서 일제히 일어나 정청(政
廳)에서부터 대문 부속건물 일체(大門 附屬建物 一切)를 일신(一新)하기로 하여 설계(設
計)대로 다듬어서 준공(竣工)하니 그 규모(規模)가 전(前)보다 배(倍)나 되고 단청(丹靑)
이 환히 밝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십여(數十餘) 성상(星霜)이 되어 허물어지는 대로 보수
(補修)한 것이 여러 차례였는데, 지금에는 기왓골이 맞지 않으며 단청(丹靑)이 퇴색(退
色)하여 먼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하고 근본(根本)에 보답(報答)해야 하는 후손(後孫)으
로서 시간(時間)을 다투는 일이어서 지금(只今)을 놓치고 수리(修理)하지 않으면 다시 어
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차제(此際)에 대종회 회장(大宗會 會長)을 비롯하여 임원 등(任員 等)은 보본단(報本壇)
을 문화재(文化財)로 등록하고자 동분서주(東奔西走) 불철주야(不撤晝夜) 각종(各種) 증빙
자료(證憑資料)를 수집(蒐集)하고 전문분야(專門分野) 학자(學者)님들의 자문(諮問)을 받
기를 여러 차례 보완(補完) 정리(整理)하여 관계부처(關係部處)에 신청(申請)하였더니 서
기 2011년 12월 16일자로 강원도 고시(告示) 제2011-435호로 삼척시 당저동(塘底洞)
75번지 임야 2,449㎡와 당저동(塘底洞) 77번지 대지 1,054㎡ 등 2필지(筆地)가 1971
년 12월 16일에 지정(指定)된 강원도기념물(江原道記念物) 제15호 실직군왕릉(悉直郡王
陵) 보호구역(保護區域) 확대 지정(指定)하여 다행히도 삼척시청에서 순수(純粹) 국고보
조로 서기 2012년 9월 20일부터 3개월에 걸쳐 실직군왕릉(재사·齋舍) 보수정비공사를
실시하여 서기 2012년 12월에 준공하니 그 내용은 실직군왕릉(悉直郡王陵) 주위 원장
(垣墻) 보수공사와 보본단 내 각 건물의 노후 지붕 기와를 다시 정비하고 실직군왕묘(悉
直郡王廟) 주위의 축대 석재를 개축(改築)하며 건물의 단청(丹靑)을 말끔하고 새롭게 정
비하게 되었다.
우리 종중(宗中)의 경사(慶事)치고 이보다 더 큰 경사는 없을 것이니 이 모두가 선조
님들께서 쌓으신 음덕(蔭德)이니 우리 후손들은 선대(先代)의 덕(德)을 계승하는 것이 가
장 큰 효도(孝道)임을 명심하고 숭조정신(崇祖精神)과 종족애(宗族愛)로 단결하여 각자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서기 2012년 임진(壬辰) 12월 후손(後孫) 김원천(金源千) 삼가 씀.
제4편 보본단기(報本壇記) 2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