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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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또 묻기를“그대는 경순왕의 몇 대손이며 실직군왕의 몇 대손인가? 그대의 시
조로부터 그대에게 이르기까지 대대로의 사적을 낱낱이 아뢰거라.”하니, 김상구가 앞
으로 나아가 아뢰기를“신의 시조 대보공(大輔公) 알지(閼智)는 신의 47대조요 경순왕
부(傅)는 신의 20대조요 실직군왕 위옹(渭翁)은 신의 18대조요, 조현대부(朝顯大夫)
인궤(仁軌)는 신의9대 방조요, 창신교위(彰信校尉) 중랑장(中郎將) 광유(光裕)는 신의7
대 방조요 감사(監司) 중(重)은 신의5대 방조요 통덕랑(通德郞) 소(沼)는 신의11대조요
삼척부사는 호장(戶長)의 손(孫)입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기이한 일이다. 그대
는 일어나서 얼굴을 들라.”하고는 그 모습을 칭찬한 다음 모시고 있던 좌우 신하에
게 이르기를“내가 오늘 조정 신하를 임용하겠다.”하고는 전교하기를“김상구를 6품
직(品職)으로 임용하라.”하여 같은 달 2월 15일 도목정사(都目政事)에서 통훈대부(通
訓大夫)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를 제수하고, 26일에 통훈대부 행례조참봉(行禮曹參奉)
을 임명하였다. 28일에 사은(謝恩)하고 대보단섭행제(大報壇攝行祭)에 참석하고 3월 3
일에 정사(呈辭)하고 돌아와 성묘를 한 다음 고장의 수령과 노리(老吏), 향대부(鄕大
夫)들과 잔치를 베푸니 모두가 성상의 덕화(德化)였는데 四월에 상경하여 다시 벼슬했
다.
4월 초 6일에 탐전에서 숙배(肅拜)하니 임금께서 묻기를“금의환향(錦衣還鄕)하니
영광스럽던가?”하니 김상구가 우러러 대답하기를“본디 삼척 호장으로 예조 참봉이
된 것은 만고에 드문 일이어서 먼 고장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하자 임금이 하
교하기를“삼척 김상구를 전옥참봉(典獄參奉) 가운데 자리가 나는 대로 임용하라.”하
니, 우승지 이수득(李秀得)이 아뢰기를“전하의 은전이 너무 지나치니 거두어들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지금 내가 인재를 얻어 등용하는 것
인데 승지가 과중한 은전이라고 하니 무슨 말인가? 조정의 어느 집안, 어느 집안은
모두 호장의 자손인데 호장의 손자 참봉이 지나치다고 하니 무슨 말인가?”승지를 추
고(推考)하라고 명하였다. 새 승지 임위(任偉)가 입시하여 아뢰기를“김상구를 이미 임
용했으니 성은이 크십니다.”라고 을해년 7월 15일 친정(親政)에서 말망(末望)으로 안
기도찰방(安奇道察訪)을 제수하여 26일에 사은하고 8월 초 4일에 부임했다. 10월 초
2일에 각화사고(覺華史庫) 봉안 차원(奉安差員)으로 능창대군(綾昌大君)을 따라가니,
사고는 열성조의 어첩(御牒)을 봉안하는 곳이다.
11월에 또 차원으로 두루 찾아뵙고 12월에 상경하여 사은하고 외방(外方) 수령과
찰방들이 숭문당(崇文堂)에서 입시할 때 임금이 관직 성명을 대라고 하니, 일어났다가
엎드려 아뢰기를“소신은 안기찰방 김상구 입니다.”하니, 임금이 이력(履歷)을 말하
라고 하였다. 일어났다가 엎드려 아뢰기를“소신은 김인궤의 방손으로 당시 은혜가 망
극하였습니다.”하니, 임금이 이르시기를“이는 김인궤의 자손에게 띠를 내린 일이
다.”하시고는 인하여 하교하기를“마적(馬籍)을 대라.”하니 일어났다가 엎드려 아뢰
기를“소신이 관장하는 것은 대마(大馬)는 7필이요 중마(中馬)는 24필입니다.”라고
29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