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5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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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실직군왕 망제단 비문(悉直郡王 望祭壇 碑文)
기해년 겨울 十二월에 내가 왕명을 받들고 삼척부사(三陟府使)가 되었다. 부 서쪽 三,
四十되는 땅에 노동(蘆洞)이 있고 동산(東山)이 있었는데 세상에서 목조(穆祖)의 황고비
(皇考妣)의 능이 그 산 안에 있는데 열성조에서 여러 차례 형국을 살폈으나 봉분을 쌓는
것이 불가하야 수호만 하라고 명하였으니 대개 신중히 하려는 뜻이었다.
야사(野史)에 이르기를‘목조의 구택(舊宅)이 노동 동산 사이에 있다.’라고 하였다.
담장과 주춧돌이 아직도 남아있어 지금에 이르러서도 촌로(村老)들이 옛 집터라고 하는
데 더군다나 분묘(墳墓)가 있는 곳이겠는가?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당시의 집터와 묘소
를 상상할 수가 있는데 너무 오래되어 징험을 하지 못해 마침내 의심되고 분명치 못하
다면 자손들의 천고의 한이 어떠하겠는가?
이 지방에 와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삼척김씨들 역시 먼 조상인 실직군왕(悉直郡王)의
묘소를 실전하여 장차 설단(說壇)을 하여 망제(望祭)를 지내려고 하면서 비석을 세우려고
그 후손 학조(學祚)와 흥일(興一)등이 나에게 비문을 청하였다. 나는 생각하건대 김씨들
의 사정이 실로 우리 이씨(李氏)들의 형적과 부합하여 더욱 느낀 바가 있으며 더군다나
나는 삼척김씨의 외손인데 어떻게 사양하겠는가? 삼가 보첩을 상고하건대 김씨는 계림
(鷄林)에서 계출(系出)하였다.
시조는 바로 신라 대보(大輔) 알지(閼智)이다. 二十七세를 내려와 경순왕(敬順王)에 이
르러 여덟째 아들 휘(諱) 추(錘)가 삼척군(三陟君)에 봉해졌고 그 아들 위옹(渭翁)은 삼
한벽상공신 은청광록대부 검교사농경 겸어사대부 상주국 좌승상(三韓壁上功臣銀靑光祿大
夫檢校司農卿兼御史大夫上柱國左丞相)으로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해졌는데 실직은 바로
삼척의 옛 이름이며 김씨가 삼척으로 관향을 쓴 것이 이때부터이다.
그 아들 배융교위(陪戎校尉) 자영(自英)과 대광(大匡) 자남(自男)으로 9세손 금자광록
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 인궤(仁軌)에 이르러 딸이 감찰어사(監察御史) 정
석(鄭碩)에게 출가했는데 그 딸이 천우위장사(千牛衛長史) 평창(平昌) 이공숙(李公肅)의
배필이 되었으니 이공숙의 딸은 바로 효공왕(孝恭王)의 비(妃)로 이가 바로 목조(穆祖)의
배(配)이다.
『삼척부지(三陟府誌)』에 이르기를‘갈야산(葛夜山)에 토성(土城)이 있고 성 가운데
어정(御井)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실직군왕의 터이다. 또 말하기를 사직(史直)
은 옛날의 실직국이다. 대저 토성 오른쪽에 한 고분(古墳)이 있고 사직 남쪽에 한 고분
이 있으니 대개 그 무덤이 높다란 것이 예사로운 무덤이 아닌데 고을 사람들이 서로 전
해 가며 두 산을 가리키며 말하기를「실직군왕의 능이 혹 배위의 능과 다른 봉분(封墳)
인가?」라고 한다. 이곳에 사는 후예들의 숫자가 많은데 선영을 확실하게 알지 못한 것
제4편 보본단기(報本壇記) 285

